본문 바로가기

건즈 포럼 번역/1988년

1988년 2월, 웰컴 투 더 정글 리츠!

1988년 1월 5~21일, 1988년 초기 활동

 
건즈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몇몇 공연을 시작으로 1988년 활동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공연은 1월 5일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Find the Children(아이를 찾아주세요)’이었다. ‘Find the Children’은 실종 아동의 얼굴을 우유갑에 게재한 캠페인이었다. 이 자선 공연에 Armored Saint, 그레이트 화이트, Party Ninjas 등이 참가했다.
 
건즈의 그다음 공연은 1월 10일 위스키에서 열렸다. 이 공연에서 스티븐 대신 그의 친구인 하워드 테먼이 무대에 올라왔다.
 
하워드 테먼 : 할리우드에서 같이 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더프가 부탁했던 것 같아. 스티브가 시카고에서 손을 다쳤었거든. 그래서 위스키 공연에 대신 서줄 수 있냐고 물어봤어. 전부 영상으로 찍어뒀으니, 유튜브에서 찾아봐. 건즈앤로지스 위스키어고고. […] 더프가 와서 네 곡 정도 들려줬는데, 첫 곡인 I Used To Love Her But I Had To Kill Her이 아직 정식 발매 전이라 들어본 적도 없는 곡이란 걸 말해주지 않았어. Use Your Illusion, Lies 앨범 발매 전이었기 때문에 백스테이지에서 엄청나게 가르쳐줬었지. 10곡 정도 쳤는데 그중 절반은 들어본 적도 없는 곡이었다고. 그래도 정말 즐거웠고, 멋진 밤이었어. […] 곡을 다 알고 있던 로디 데이먼이 내 뒤에서, 반대편에는 델 제임스가 앉아서 큐 사인을 보냈어. 아마 영상을 보면 그 둘이 “오케이, 여기서 멈춰!”나 “들어가!”라고 하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진짜 재밌었어. 긴장한 채로 연주하고 있으면 “진정해! 여긴 느린 부분이야”라던가 “부드럽게 쳐”라고 이끌어줬어.
 
그 후 건즈 멤버 중 몇 명은 1월 14일 할리우드의 Coconut Teazer에서 Drunk Fux 공연을 했다. 이 공연에 출연한 액슬은 롤링 스톤스의 ‘Honky Tonk Women’과 ‘Yesterdays(후에 UYI2로 발매됨)’를 노래했다. 그리고 며칠 뒤인 1월 18일, 일부 건즈 멤버와 Drunk Fux 멤버에 몇 명이 더 합류해 Coconut Teazer에서 Pigs at Large라는 이름으로 공연했다.
 
1월 21일, 드디어 건즈앤로지스 공연이 캣하우스에서 열렸다. 이 공연은 차 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할리우드 DJ(아마도 조셉 브룩스)를 돕기 위한 깜짝 공연이었다. 마침내 스티븐이 복귀했으며, 빈스 닐이 마지막 곡인 Whole Lotta Rosie 때 무대에 합류했다. 사운드가든의 킴 타일과 크리스 코넬이 이 공연을 보러 왔다.
 
킴 타일 : 크리스랑 같이 캣하우스에서 열린 건즈앤로지스 공연을 보러 갔다. 그때 당시 아직 골드(50만 장 이상 판매) 음반이 나오지 않았었는데, 게펜의 A&R 담당자가 “다음 주면 골드 음반이 될 겁니다”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렇냐고 했었지. 캣하우스엔 아쿠아넷(헤어스프레이)을 뿌리고, 스판덱스를 입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많았다. 좀 바보 같은 꼴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연을 보며 크리스랑 서로 쳐다보면서 “무대 장악력 미쳤다”고 느꼈다. 리허설을 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틀에 짜여진 무대도 아니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본인들을 보여줬고, 그 모습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4~5년 뒤에 같이 투어를 하게 됐지.
 
후에 더프가 스티븐 복귀 관련 농담을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마 건즈 멤버들은 스티븐이 돌아와 기뻤을 것이다.
 
더프 :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지 말고, 오랫동안 함께 하자는 게 밴드의 철학이었어. (농담 투로)만약 스티븐이 죽으면 프레드 커리를 데려올 거야.


밴드의 보스는 누구인가

 
80년대에 뿌려진 밴드 내부 갈등의 씨앗은 90년대에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1987년 6월, 밴드 운영 방식에 대한 질문을 받은 액슬은 이렇게 대답했다.
 
액슬 : 다른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적이다.
 
이런 주장을 했지만, 액슬은 빠르게 밴드 내 주도권을 차지했다. 1987년 12월 스티브 해리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밴드를 자신의 밴드라고 칭하며 본인의 밴드 내 위치를 설명했다.
 
액슬 : (본인이 밴드 리더인지 묻는 질문에) 방향성면에서는 그래. 밴드의 방향성이나 아티스트로서 하는 일에 내 강한 신념과 믿음이 받쳐주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네.
 
1년 뒤인 1988년, 해리스는 더프와 스티븐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겨 액슬의 발언에 대한 감상을 물어본다.
 
더프 : 걔가 그렇다면야! (웃음) 그렇게 말했어? 그래, 맞아! […] 걔 그 말 할 때 안 웃었어?
 
스티븐 : 응, 액슬은 매일 우릴 돌보고 있어! 오해하진 마. 우린 액슬을 사랑해.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우린 다 큰 성인이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밴드 초기에는 이지의 목소리가 두드러졌지만, 밴드의 인기가 커지며 점차 액슬과 슬래쉬 쪽으로 넘어오게 됐다.
 
이지 : 관심이 쏠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지금이 좋아.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할지,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지 계획할 필요가 없거든. 날 알아보는 사람이나 귀찮게 구는 사람 한 명 없이 클럽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좋아. 액슬이랑 슬래쉬는 어딜가도 주목받거든.
 
(탈퇴 후 인터뷰에서) 나는 리더가 아니었다. 밴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이었다.
 
더프도 비슷한 말을 한다.
 
더프 : 별 신경 안 써. 슬래쉬랑 액슬은 나서서 말하는 걸 좋아해. 공연을 할 땐 모두가 무대 위에 있다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하지. 잡지나 뭐 그런 거 누가하든 상관없어. 우린 밴드고, 팬들도 알고 있어. 액슬과 슬래쉬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야. 
 
1987년 말, 액슬은 음악적 방향에 대한 밴드의 의견 불일치가 모두 정리되었고, 모두가 한 곳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액슬 : 원룸 스튜디오에서 연습하고 있었을 때였어. PA 장비(음향 장비)가 없어서 소리를 잘 들으려고 스튜디오 밖 주차장에 서 있었지. 처음으로 Nightrain, Rocket Queen, My Michelle 리허설하는 걸 들었는데, 다들 너무 괜찮았고 모두가 열심히였어. 벅차오른 채로 “드디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곡이 나왔어”라고 말했는데, 이지가 내게 “이제 네가 지난 3년 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겠다”고 했어.

 


1988년 1월 31일, 라임라이트

 
1988년 1월 31일, 밴드는 뉴욕의 라임라이트에서 공연했다. 이 공연은 거의 어쿠스틱 공연이었고, 어떤 이유에선가 밴드는 평소보다 취해있었다.
 
이지 : 어쿠스틱 곡은 꽤 괜찮게 했어. 문제는 그다음 일렉 곡을 시작했을 때였지.
 
슬래쉬 : 이런 말 하기 싫지만, 돈 때문이었어. 라임라이트 45분 공연에 7,500달러를 준다고 했거든. 그래서 알겠다 했지만, 솔직히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한 번도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본 적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지. 액슬이 노래를 하고 우린 그냥 즉흥 연주를 했어.
 
최악의 공연... 개인적으로 최악이었던 공연은 바로 말해줄 수 있는데, 밴드 모두에게 최악이었던 공연은 존재하지 않아. 별로인 공연과 좋았던 공연처럼, 별로일 때는 별로고, 좋을 땐 좋은 거지. 항상 잘할 순 없는 거야. 아무튼 개인적으로 최악이었던 공연은 얼마 전에 라임라이트에서 했던 무대야. 완전 정신이 나가서 무대 아래로 세 번이나 쓰러졌었지. 기타를 들고 말이야.
 
공연 중 겪은 일 중 가장 최악이었던 건 뉴욕 라임라이트에서 스테이지 다이빙을 했을 때야.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져서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었지.
 
더프 : 라임라이트에서 어쿠스틱 공연을 했었는데, 다들 엄청 취해있었어. 슬래쉬는 무대에서 세 번이나 떨어졌고, 스티븐도 드럼세트에 엎어졌고, 이지도 넘어져서 무대에 남은 사람은 액슬이랑 나뿐이었어.
 
리츠 공연을 하기 전, 우린 맨해튼의 라임라이트(원래 교회였던 공연장)에서 세미 어쿠스틱 공연을 하기로 했다. 밴드 멤버 모두가 취해서 공연이 진행될수록 한 명씩 빠져나갔고, 결국 나랑 액슬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쓰러졌다. 재미는 있었지만, 그 공연에서 교훈을 얻었다. 연주를 못 할 정도로 취해선 안된다고 다짐했다.
 

1988년 1월 31일, 라임라이트

통제 불능이 되어버린 슬래쉬의 중독

 
로버트 존 : 슬래쉬는 매우 헌신적인 기타리스트다. 앰프 뒤에 가서 토를 하고 다시 나와 계속 연주를 이어갔다. 무대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바지와 배 사이로 떨어졌을 때, 옆에서 그걸 보며 “야, 너 타고 있어”라고 말해줬는데 슬래쉬는 그냥 그 고통을 참아가며 솔로 연주를 했다.
 
슬래쉬는 Appetite For Destruction 발매 전과 1987년 투어 시작 전에 잠시 중독 상태에서 벗어났었다.
 
슬래쉬 : 만약 나나 이지가 멈추지 않았다면 지금의 건즈 앤 로지스는 없었을 거야. 헤로인은 많은 사람을 망친 약이야. 정말 많은 이들을 망쳐버렸어. 그러니까 그만둬야 해. 
 
그러나 1988년 초, 공백기가 시작되자 슬래쉬는 다시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머틀리 크루와의 투어가 무산되며 생긴 공백기를 슬래쉬는 잘 견디지 못했다.
 
슬래쉬 : 분명 돌이킬 수 없는 파괴적인 행위라는 건 분명해. 아직 실감하지 못했을 뿐. 어젠 정말 힘들었어. 저 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었거든. 하지만 이게 인생이란 거잖아. 나한테 있어서 로큰롤은 이런 거였어.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거야. 이걸로 내 삶이 좀 짧아진다고 하더라도 괜찮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여기서 60년은 더 살 사람들보다 내가 더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투어를 돌지 않으면 맘 편히 살 수 없어.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더 큰 행복을 느껴.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투어를 안 도는 게 나한텐 최악의 시기인 것 같아. 가방 하나 들고 다니면 내 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까 좋아.
 
떠돌아다니는 게 좋다. 호텔에 머물면 어딘가 묶여있는 기분이 안 드니까. LA에 그렇게 오래 머물러 본 적 없다. 한 곳에 오랫동안 있는 건 무척 불편한 일이다. 그리고 어떻게 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고, 짜증이 난다. 호텔 생활의 장점은 몇몇을 빼고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다.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연습을 방해하지 않아서 녹음도 많이 할 수 있고.
 
갑자기 친구가 많아졌다. 나는 원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라 신뢰하지도 않고,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 술을 마시면 적극적인 사람이 되니까.
 
철없는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에 술을 어느 정도 마셔야 해. 안 그러면 어색해서 제대로 칠 수 없고, 긴장되거든.
 
1988년 10월, 슬래쉬는 잭 다니엘스에서 보드카로 갈아탄다.
 
슬래쉬 : 혀에 검은 줄무늬가 생겼어. 담뱃잎이랑 잭다니엘의 숯 때문이야. 처음 봤을 때 “씨발 이게 뭐야!!”였지. 이빨도 얼룩덜룩해. 콜라를 마시면 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효과 없었어. 그러다가 더프가 보드카를 마시라고 했지. 더프는 항상 보드카를 마시거든. 그래서 나도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했고, 혀가 정상으로 돌아왔어. 이빨도 깨끗해졌고.


1988년 2월 2일, 웰컴 투 더 정글 리츠!

 
1988년 2월 2일, 밴드는 리츠 공연을 한다. 이 공연은 MTV에서 방영되었고, 대단한 홍보 효과를 얻었다. 
 
액슬 : 생각만큼 공연이 잘 진행되진 않았어. 스테이지 다이빙을 했는데, 입고 있던 Thin Lizzy 티셔츠가 찢겨나갔지. 사람들이 내 목걸이를 잡고, 내 목을 조르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어. 어떤 애는 내 팔을 자기 다리 사이에 껴서 내 팔찌를 빼려 했지. 더그 골드스타인이 내 반대쪽 팔을 잡고 무대 위로 끌어당기고 있어서 때릴 수도 없었어. 몸이 두동강 나고 있었지. 서른 명이 날 무대 위로 올려보내려 했고, 또 서른 명이 날 밑으로 끌어당기고 있었어.
 
슬래쉬 : 그 공연(리츠) 정말 싫어. 다들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악이었어. 그냥 별로였어. 사람들이 내 기타 튜닝을 망가뜨렸고, 잭을 뽑아버리기도 했어. 처음 세 곡 정도는 튜닝이 제대로 안 된 채로 연주했지. 카오스였어.
 
뉴욕 리츠 공연은 MTV에서 크게 흥행했어. 결코 최고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액슬은 보컬에 문제가 있었고, 연주는 나쁘진 않았지만 지금이 훨씬 낫거든. 어쨌든 그 무대가 밴드의 본질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해.
 
더프 : 끔찍했어! 베이스는 두 곡을 칠 동안 튜닝이 나간 상태였어. 
 
이 공연은 액슬이 스티븐을 ‘팝콘’이라 소개한 최초이자 유일한 공연이었다.
 
스티븐 : 리츠에서 MTV 생방송 공연을 했는데, 그날 액슬이 날 ‘스티븐 팝콘 애들러’라고 소개했어. 딱 그때 한 번뿐이었지. 항상 ‘스티븐 캘리포니아 인디카 버드 애들러’라고 소개했거든. 내가 대마를 엄청 피웠어서. 그러다가 그날 TV 생방송에서 갑자기 팝콘이라 불렀어. 드럼을 칠 때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게 팝콘 기계에서 터지는 팝콘 같았나 봐. 모르겠어. 걘 미쳤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훗날 디지는 이 공연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디지 : 여기(로스앤젤레스)에 있던 모두가 건즈가 터질거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이 날 공연의 오프닝은 그레이트 화이트였는데, 원래는 건즈가 오프닝을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앨런 니븐 : 원래는 그레이트 화이트가 마지막 순서였다. MTV가 그레이트 화이트를 섭외하고 싶어 하길래 내가 “그럼 제가 맡고 있는 다른 밴드가 오프닝을 했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알겠으니 건즈를 오프닝에 세우세요”라는 답을 얻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레이트 화이트를 앉혀두고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중요한 건 ‘어려운 것 뒤를 따르지 말고, 따르게 만들어라’라는 거야. 머리 좀 굴릴 줄 안다면, 건즈를 클로징으로 세워야 해. 지금 걔네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세니까 바꾸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그 말을 들은 그레이트 화이트 멤버들은 순서를 바꾸자고 했다. 그렇게 그레이트 화이트의 리츠 오프닝 무대가 끝나자 슬래쉬가 달려와서 “저런 무대 뒤에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다. 
 

1988년 2월 2일, 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