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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1985년 6~12월

1985년 6~12월

1985년 6월, 헬 투어

 

이지 : 이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된 건지 말해줄게. 사막에 100마일 정도 들어갔을 때,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고장 나 버렸어. 첫 공연을 하려고 가던 도중이었는 데 말이지. 더프가 미국 북부에 시애틀이 있다고 말해서 우린 그게 멋있다 생각해서 간 거였거든. 근데 완전 대참사가 벌어지고 만 거지. 망할 사막에 갇혀버렸고,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 그러니까 내 말은 거기서 하는 공연이 300달러짜리였거든... 그래서 우린 히치하이킹을 했어. 사막에서 좆같은 이틀을 보내고 시애틀에 도착했지. 공연에는 열 명인가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리고 우린 돈을 받지 못했지. 어쨌든 할리우드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 하나가 된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이 일 이후부터 건즈의 좌우명은 '엿 먹기 전에 먼저 엿 먹여라'가 되었어.

 

지옥의 투어를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즈는 스티븐을 정식 멤버로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븐이 열정적으로 시애틀 투어(지옥의 투어)에 합류하고 싶은 의사를 내비쳤고, 결국 건즈는 투어 출발 전날에 스티븐에게 밴드에 합류해 달라고 요청한다.

 

더프 : 시애틀에서만 공연하는 게 아니라 시애틀에서부터 내려오는 서부 해안 투어였어. 포틀랜드, 유진, 새크라멘토,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공연을 하려 했어. 펑크 밴드를 했던 시절에 이 클럽들에서 공연을 한 적 있었고, 그래서 기획한 거였어.

 

하지만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차에 문제가 생기고 만다.

 

슬래쉬 : 프레즈노(로스앤젤레스의 도시로 할리우드에서 3시간 정도 걸림)쯤 갔을 때 차가 고장 났어.


차에서 기타를 꺼내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차를 고쳐서 시애틀에서 만나자고 했어. 우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다른 공연들은 다 취소했어. 잠깐 길가에 서 있다가 트럭을 타고 출발했지.

 

히치하이킹을 해서 천천히 북부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채소를 서리해 먹으며 배를 채웠다고 한다.

 

슬래쉬 : 우리가 공연했던 곳은 고릴라 가든이란 클럽이었는데, 펑크록의 대명사 같은 곳이었어. 눅눅하고, 더럽고, 퀴퀴한 맥주 냄새가 났지만 말이야.

이지 : 그래도 반응은 꽤 좋았어.

스티븐 : 그날 밤 공연하기로 한 그 더러운 클럽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우린 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화장할 시간이 없었어. 머리를 잡아당기고, 아이섀도우를 문지르고, 아이라이너랑 립스틱을 두껍게 바르는 단계긴 했지만, 그것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고. 다행히 우린 바로 앞 무대를 한 밴드의 장비를 빌릴 수 있었어. 꽤 엉성하게 시작했지만, 반응은 정말 좋았어.

 

밴드가 관객을 충분히 모으지 못했기에 그들은 약속된 250달러 대신 50달러밖에 못 받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건즈는 더프 친구의 도움으로 LA로 돌아온다. 그들은 6월 28일 스타더스트 볼룸에서 공연하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에어로스미스의 'Mama Kin'을 연주한다.
 

1985년 6월 28일. 스타더스트 볼룸


마크 캔터

 

슬래쉬와 마크 캔터는 1976년 그들이 5학년일 때, 슬래쉬가 마크의 자전거를 훔치려 하면서 만났다.
 
슬래쉬 : 마크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 걘 항상 사진을 찍고 다녔어. 나이가 들면서 마크는 에어로스미스의 광팬이 되었고, 그 밴드의 잡지 인터뷰나 사진 등 모을 수 있는 모든 건 수집하고 다니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내가 밴드를 시작하자 마크는 스크랩북에 내가 하는 걸 다 정리했어. 걘 그냥 대단해. 나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과거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을 거야.
 
마크의 가족은 할리우드에 캔터스 델리(Canter's Deli)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다.
 
더프 : 캔터스 레스토랑에서 슬래쉬랑 스티븐을 만났는데, 그날 밤 마크를 만났던 것 같아. 그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모든 걸 기록했다. 우리 모두에게 안정감을 주던 사람이었고. 마크는 건즈의 6번째 멤버였어.
 
스티븐 : 그때 우린 돈이 없었지만, 마크 같은 좋은 친구들이 있었어. 아무도 우리 곁에 오래 있어 주거나, 믿어주거나, 깊이 사귀지 않았는데, 마크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 언제나 우릴 지지해 줬고, 정말 우릴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필요한 게 있으면 마크가 항상 가져다줬어. 그리고 건즈앤로지스의 첫 번째 현수막은 마크가 우리를 위해서 사준 거야. 그는 진짜 훌륭한 사람이고, 멋있는 친구야. 우리 중 가장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마크의 부인은 내 머리를 잘라주곤 했지.


마크는 우리 사진을 찍어줬어. 마크가 건즈의 무대 뒤 모습을 찍는 거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다들 그를 신뢰했지. 우린 마크가 거지 같은 타블로이드에 사진을 팔거나, 우리가 허락하지 않은 일들을 누설하고 다니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마크랑 나는 여전히 친해.
 
마크는 초기 건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2007년 'Reckless Road'라는 책을 냈다.


1985년 7월

 

5명의 라인업으로 점점 더 많은 공연을 했고, 더 많은 리허설과 작곡을 해나가며 그들은 한 팀으로써 손발이 맞기 시작했다. 더프의 펑크록 감성, 이지의 튀지 않는 리듬감, 슬래쉬의 요란한 블루스와 속주, 그리고 스티븐은 독특한 그루브감이 녹아있는 드럼이 한 곳에 모여 엄청난 조합이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감정이 북받쳐 있는 액슬의 강렬한 보컬이 합쳐졌다. 이 라인업으로 건즈는 LA 음악계에서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건즈는 1985년 7월 4일 Madame Wong's East에서 공연했다. 마지막 곡인 'Heartbreak Hotel'을 연주할 때 사운드를 담당하는 직원이 초과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운드 시스템을 꺼버렸지만, 밴드는 시스템 없이 노래를 끝까지 마무리했다. 7월 20일 Troubadour에서 한 공연에서 건즈는 처음으로 'Welcome to the Jungle'을 불렀다.

 

더프 : Troubadour에서 처음으로 정글을 부르고, 그다음 날 밤에 우린 UCLA에 가서 공연했어. 거기선 35달러랑 공짜 맥주를 받았지.

 

7월 26일 Seance에서 공연했는데, 이 공연은 새벽 2시 30분에 시작되었고 슬래쉬는 술에 취해있었다. 액슬은 무대 위에서 'Back Off Bitch'를 슬래쉬에게 바침으로써 그를 저격했고, 내려와서는 마크 캔터에게 슬래쉬가 더 이상 공연에 취한 채로 올라가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1985년 7월 4일. Madame Wong's East


1985년 8월, 미스틱 스튜디오 데모

 

1985년 8월 밴드는 첫 번째 데모를 위해 미스틱 스튜디오에서 5곡을 녹음한다. 녹음을 하려면 300달러를 내야했는 데, 이 돈은 Black Randy and the Metrosquad라는 밴드의 랜디 블랙이 지불한다.

 

더프 : 지옥의 투어 이후에 우린 이제 실전이란 걸 깨달았어. 그리고 한 두 달 뒤에 첫 데모를 녹음했지. 블랙 랜디라는 사람이, 들어봤을지 모르겠지만 메트로 스쿼드라는 밴드가 있는데 그 밴드의 사람이야. 어쨌든 그 사람이 우리가 녹음할 수 있게 돈을 마련해 주었고, 우린 작은 펑크록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어.

 

그리고 마크 캔터는 믹싱의 마무리를 위해 250달러를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모에는 'Welcome to the Jungle', 'Anything Goes', 'Back Off Bitch', 'Think About You'가 수록된다. 'Heartbreak Hotel'도 녹음했지만, 이 곡은 데모에 싣지 않았다.


1985년 8월, 스타더스트 볼룸과 록시

 

1985년 8월 밴드는 스타더스트 볼룸에서 공연한다. 이 공연에는 데이빗 리 로스와 브렛 마이클스가 왔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 날 마지막 곡인 'Heartbreak Hotel' 때 시스템이 꺼졌다고 한다. 그 후 31일에 록시에서 공연한다.


성공을 위한 노력

 

80년대 초 할리우드의 다른 밴드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슬래쉬 : 밴드를 알리려고 빡세게 움직였어. 여러 클럽을 다니면서 전단지랑 그런 걸 돌리면서 말이야.
 
슬래쉬는 밴드의 아트워크 대부분을 디자인했고, 첫 번째 티셔츠도 디자인했다.
 
슬래쉬 : 그걸 다른 사람한테 맡길 만큼 돈이 없어서 그냥 내가 한 거야.


기타를 치기 전엔 일러스트레이터였어. 포스터에 넣을 아트워크가 필요했는데 우린 돈이 없었어. 그래서 건즈앤로지스 로고인 총 두 자루랑 꽃을 그린 거야.
 
또한 그는 본인이 밴드의 매니저 역을 했었다고 말한다.
 
슬래쉬 : 밴드에 매니저가 생기기 전에 난 밴드를 위해서 모든 프로모션을 도맡아서 관리했어. 낮에는 애들이랑 회의하고, 밤에는 나가서 홍보하고 다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1993년 슬래쉬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슬래쉬 : 우린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스스로를 알리고... 정말 우리 밴드를 알리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했어. 유명 밴드가 되겠다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꿈꾸면서 말이야.


우리는 사다리를 타고 아주 작은 계단을 하나씩 올라서 마침내 성공한 거지. 한 번에 바로 성공한 게 아니야.


가드너 스튜디오 및 여러 리허설 장소

 

실버레이크에서 리허설하다

밴드가 처음으로 리허설한 곳 중 하나는 실버레이크였는데, 시간당 6달러를 내고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니키 비트의 집

후에 밴드는 LA Guns의 드러머인 니키 비트를 만난다.
 
스티븐 : 우린 니키 비트의 집에서 리허설을 했어. 그 집은 LA 동물원 가까이 있었고, 그 말인즉슨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 니키가 LA Guns에 들어가서 우린 곧바로 다른 장소를 찾아야 했어.

슬래쉬 : 진짜 구린 곳이었지만, 리허설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지. 공업지구에 있어서 아무도 시끄럽다고 찾아오지 않았어.

 
가드너 스튜디오

첫 정규 리허설 장소는 가드너 스튜디오로, 한 달에 400달러를 내고 빌렸다. 화장실도, 냉온풍기도 없었지만, 밴드는 항상 그곳에서 합주했다. 이곳에서 AFD, Lies 그리고 UYI I, II의 수록곡들이 쓰인다.
 
슬래쉬 : 화장실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정말 감옥 같은 곳이야. 그래도 거기 음향은 최고였어! 그 누구도 볼륨을 내리지 않아서 정말 시끄러웠지.


말 그대로 가로 20피트, 세로 10피트 정도 되는 원룸 스튜디오에서 생활했어. 밴드 모두가. 그러니까 우리 다섯 명 모두가 같이 지냈어. 이층 침대 하나가 있었고, 그 밑에 모든 장비를 뒀어. 아, 그 침대를 만들려고 공사장에서 나무도 훔쳤다고. 스티븐이랑 이지가 침대를 만들었어. 난 대부분의 시간을 데니스(미국의 레스토랑 체인점)에서 보냈어. 1달러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거든. 우리 모두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더프 : 그때 우린 항상 'Nightrain'이란 한 병에 1달러짜리인 값싼 와인을 사마셨어.
 
다른 할리우드 밴드인 The Wild가 가드너 스튜디오 주변에서 연습하고 있었는데, 이 밴드의 키보디스트는 향후 건즈에 합류할 디지 리드다.


1985년 9월

 

9월 9일, Troubadour에서 'Rocket Queen'을 처음 연주한다. 그리고 28일에는 LA Street Scene 페스티벌에 나갔는데, 이 페스티벌은 LA가 주최하는 큰 무료 야외 페스티벌이었다. 이 쇼에서 슬래쉬는 비씨리치 모킹버드에서 레스폴로 바꿔서 연주한다.

 
슬래쉬 :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6~7개의 무대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정말 대규모 페스티벌이었어. 우린 Fear의 오프닝 무대를 섰고, 더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무대 앞에 섰지. Fear의 팬들이 정말 미친 듯이 날뛰었던 게 기억나. 우리 매니저인 비키랑 나는 하루 종일 우릴 알리기 위해서 이 거대한 난장판 속을 돌아다녔어.


많은 지지를 받는 펑크 밴드 뒤에 무대를 하는 건 좀처럼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 그래도 이건 우리가 했던 멋있는 공연 중 하나야. 올라가서 연주를 했는데, 그 몇 초 만에 공연은 앞줄과 우리 사이의 침 뱉기 시합으로 변질됐어. 재밌긴 했는데,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역겨웠지. 결국 온몸이 가래 범벅이 되어서 끝났고, 내가 내뿜는 열 때문에 냄새가 꽤 났어.

스티븐 : 진짜 잊을 수가 없어. 우린 그 공연이 재밌고 우리한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지. 난 베이스 드럼을 옮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 마신 잭 다니엘 병이 내 얼굴을 지나쳐서 카우벨이 부딪혔어. 정말 1인치(2.5cm) 차이로 얼굴을 비껴갔다고! 어떤 미친놈이 정말 날 죽이려고 했어. 그리고 공연 내내 사람들은 우리한테 침을 뱉었지. 정말 더러웠어. 난 이게 펑크의 마조히즘과 자기 학대의 병든 잔재라고 생각해. 이상하고 위험한 행동들이었지만, 좀 슬펐어. 더프가 가래를 맞고 엄청 화나 보였던 게 기억나. 이 공연은 절대 못 잊을 거야.


침 뱉기 축제였어. 진짜 좆같은 가래 부대들이랑 공연 내내 침 뱉기 대결을 했어.
 

1985년 9월 9일. Troubadour


로버트 존

 

1986년 초, 이지의 친구인 로버트 존이 밴드의 사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로버트는 원래 모터사이클러였지만, 사고로 인해 그만두고, 친구인 크리스 홈즈(W.A.S.P.의 기타리스트)의 권유로 취미였던 사진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고 한다. 존은 건즈 결성 전부터 이지의 친구였으며, 이지의 소개로 멤버들을 알게 된다.
 
이지 : 액슬이랑 같이 작곡을 하던 때였지만, 우린 같은 밴드가 아니었어. 그냥 노래만 같이 만들었지. 이 무렵 존을 만났어. 그가 캐딜락을 타고 있던 거랑 나한테 술을 자주 사줬던 게 기억나네. Troubadour에서 논 적도 있었는데, 존을 처음 만난 곳이었어. 존이 나한테 자긴 사진작가고 몇 장을 찍어주겠다고 했었어.

슬래쉬 : 난 남 대하듯이 대했어. 그냥 못 견디겠더라고. 사진을 찍을 때면 존나 힘들게 만들어줬지. 뭐, 근데 견고한 관계는 그런 끝과 끝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잖아. 끝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지? 그리고 로버트한테 물어보면 보나 마나 내가 자길 싫어했다고 말할걸? (웃음)
 
특히 존은 액슬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고, 그들은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액슬 : Troubadour에서 존을 만났던 것 같아. 이지는 존이 Rose(할리우드 로즈 이전 밴드)의 사진을 찍어주길 바랐어. 로버트는 그때 WASP이랑 일하고 있었고, 이지는 WASP 무대 연출의 일종으로 무대 위에 묶여있는 여자랑 사귀고 있었어. 음, 그 여잔 결국 로버트의 여자 친구가 되었지. 로버트는 막 일을 시작한 단계였고, WASP은 유명해져서 더는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 걔들은 같이 일하던 모든 사람을 내보내 버렸지. 건즈를 결성할 때 이지가 로버트를 데리고 왔고 우린 금방 친해졌어. 난 로버트가 진지하게 일에 임하는 모습을 봤어. 우린 잘 맞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친하게 지내고 있어.
 
라즈는 존의 사진을 보고 "로버트는 피사체를 락의 신으로 보이게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고, 더프 역시 밴드가 존의 결과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더프 : 그때 우린 돈이 없어서 무료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했어. 마침 로버트가 일이 끝나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어. 그때 그는 정원사 일을 하고 있어서 온몸이 진흙투성이였어. 우린 그 모습을 보고 "와, 완전 프론데?"라고 생각했어. 처음엔 좀 별로였는데, 뭐 우리도 그땐 똑같이 별로였어. (웃음) 그래서 더 좋았지. 우린 피사체가 된 게 정말 좋았어. 그 사진들을 뽑아서 선셋의 전봇대나 공중전화부스에 붙일 수 있었거든.

액슬 : 지금은 단속 때문에 하기 힘들지만, 그 당시엔 모든 밴드가 길에 나가서 붙일 수 있는 곳엔 다 자기네 포스터를 붙였어. 이른바 홍보 전쟁이었지. 진짜 재밌었어. 포스터를 붙여놓으면 얼마 뒤에 다른 밴드가 와서는 그 위에 자기네 걸 붙였거든. 밤에는 더 재밌었다고. 우리가 점점 커지고 나서는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포스터를 붙이게 했어. 근데 곧 그들이 우리가 준 돈으로 맥주만 사 마시고 포스터는 붙이지도 않았다는 걸 알게 됐지.
 

1986년 2월 28일. 액슬과 로버트 존


1985년 10월

 

10월의 첫 번째 공연은 10월 5일 샌 프란시스코 The Stone 클럽에서 열렸다. 이 공연은 건즈와 친한 The Jetboys 공연의 오프닝 무대를 선 것이었다. 다음 공연은 10월 10일 Troubadour에서 열렸다. 이 공연은 LA Guns가 오후 무대를 취소해서 할 수 있었던 공연으로 여기서 'Paradise City'를 처음 불렀다.

10월 18일 컨트리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그들은 200달러를 받는다. 10월 31일에 라디오 시티에서 했던 공연에서 클럽 측은 밴드에게 무대를 찍은 비디오를 돈 대신 주려 했지만, 슬래쉬가 현금으로 달라고 주장했다.
 

10월 5일 공연 포스터
1985년 10월 10일. Troubadour
1985년 10월 31일. 라디오 시티


거리를 돌아다니다

 

밴드는 리허설, 녹음 그리고 라이브를 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녔다. 그들 중 몇은 본인의 아파트를 갖고 있었고, 동시에 몇은 아무 데나 돌아다니며 잠을 청하곤 했다.
 
액슬 : 계약하기 전까지 5년 동안 길바닥에서 지냈어. 두 달 이상 한 곳에 머문 적 없었고, 항상 사람들 집을 떠돌아다녔어. 부모님은 '돈은 내줄 테니 집으로 돌아와서 대학에 진학해라'라고 하셨지만, 난 '아뇨, 난 지금 이걸 해야 해요'라고 했어.
 
이지는 여자 친구 데시 크래프트 집에 머물렀다.
 
조셉 브룩스 : 그들은 아무 데서나 잤다. 이지는 가죽 팔찌를 만들었고, 난 그걸 내 레코드 가게에서 팔았다. 이게 그들이 살아간 방식이었다.

더프 : 헝가리 마피아 조직 밑에서 휴대전화를 파는 일을 했어.


1985년 11월

 

11월 22일 Troubadour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매진시킨다.


1985년 12월

 

12월 20일 뮤직 머신에서 마지막 곡으로 'Nightrain'을 선보이는데, 이 곡은 그날 사운드 체크를 할 때 만든 곡이었다.

 

슬래쉬 : 이건 오늘 사운드 체크를 하면서 만든 곡이야. Nightrain!
 
이지 : 다들 마시는 그 술에 대한 거야.
 
라즈 큐 : 다른 밴드가 사운드 체크를 하는 동안 액슬이랑 조(라즈의 동생) 그리고 나는 술을 사러 뒷골목으로 갔어. 한 남자가 새로 들어온 싼 와인이라고 Night Train Express를 보여줬어. 조가 두 병을 들고 근처 술집으로 돌아왔는데, 액슬은 한 병을 까면서 바다 위 눈부신 일몰 같은 미소 지으며 "이거 진짜 최고야. 이걸로 노래를 만들어야겠어"라고 말했어. 어디선가 하모니카를 꺼내고는 잠깐 멜로디를 불더니 빠른 속도로 공책에 뭘 적어댔지. 그리고 몇 분 후 액슬은 우리한테 노래 하나를 들려줬고,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 하지만 그 와인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 밴드에 돌아간 액슬은 한 시간 안에 이 곡을 완성해 냈고, 'Nightrain'은 그날 저녁 바로 무대에 올라갔어.

 

후에 밴드는 고립되어 있는 LA 음악계에서 외부인(비록 슬래쉬와 스티븐은 어린 시절부터 LA에 거주했지만, 출생을 따지고 보면 외부인)이 인기를 얻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토로한다.

 

액슬 : 여긴 정말 날 토해내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 본인의 자리는 본인이 쟁취해야 해. Troubadour에서 2년간은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어.
 

1985년 12월 20일. 뮤직 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