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즈 포럼 번역/건즈 이전

더프, 슬래쉬, 스티븐의 어린 시절

건즈앤로지스 이전의 더프

 
마이클 "더프" 맥케이건은 1964년 2월 5일 시애틀 유니버시티 디스트릭트의 아이리시 동네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더프 왈, 난 지미 헨드릭스랑 출신지가 같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어!) 그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타이피스트였던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했다.

2살 때 더프의 부모는 그를 '더프'라 부르기 시작했다.
 
더프 : 그건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불린 애칭이야. 왜냐면 마이클은 굉장히 흔한 이름이잖아. 누가 길에서 '마이클!'하고 소리치면 어린애 20명이 달려오는 걸 볼 수 있을걸? 그리고 '더프'는 정말 흔한 아일랜드 별명이야. 더프의 OO같이 더프가 들어간 가게 간판도 엄청 많은걸.
 
1991년 그는 '더프'라는 애칭이 싫고, 또 다른 애칭인 '로즈'는 다른 더프 맥케이건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음악에 관심을 갖다

더프의 가족은 굉장히 음악에 재능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콰르텟에서, 형제자매들은 수많은 밴드에서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했다.
 
더프 : 정말 운 좋게도 난 음악을 잘하는 대가족 출신이야. 형 누나들이 연주하는 걸 많이 들었고, 결국 나도 그들이 연주하는 것 혹은 라디오에서 들은 것 아니면 지미 헨드릭스 곡을 연주하곤 했어. 코드는 한 번도 배운 적 없지만 5분만 있으면 그게 무슨 코드인지 다 알아낼 수 있어. 본능인가 봐.

나는 그냥 레드제플린, 지미 헨드릭스, 에어로스미스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어. 레드제플린은 음악적으로 정말 훌륭하고, 지미 헨드릭스는 동향이었기에 우리 지역에서는 엄청났지. 그래도 아마 그중에서 에어로스미스한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 그때 에어로스미스는 엄청 멋있는 밴드였어. 내가 12살이었을 때, 그러니까 76년도에 그들을 봤는데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고 느꼈어.

12살 때 시애틀 킹돔경기장에서 레드제플린을 봤는데 나도 그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진부한 이야기지만 사실이야.

(음반이 본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얘기하며) 우연히 D.O.A.의 'The Prisoner'라는 곡을 들었어. 그 밴드는 150마일 정도 떨어진 캐나다 밴드였는데, 내 눈을 뜨게 해 줬어. 그전까지는 펑크록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 그 음반은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 The Damned, Stiff Little Finger, The Vibrators 그리고 쟈니 썬더스의 음악을 찾아들었어. 그래도 굳이 뽑자면 D.O.A.랑 쟈니 썬더스가 내 인생을 바꾼 사람들일 거야.
 
더프의 주된 음악적 관심사는 펑크였고, 가장 좋아하는 곡은 후에 건즈의 커버 앨범인 스파게티 앨범에도 실리는 Fear의 'I Don't Care About You'였다. 또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AC/DC였다. 그리고 그는 이기 팝을 보고 그와 같은 일, 즉 뮤지션의 꿈을 갖게 되었다.
 
더프의 형 브루스가 더프에게 베이스를 가르쳤다.
 
더프 : 8학년 즈음 형이 베이스를 가르쳐줬어.
 
워낙 다양한 악기를 다루던 가족들 사이에서 자랐기에 그는 베이스, 기타, 드럼 모두를 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더프가 드럼을 치는 것을 본 한 지역 밴드가 그에게 가입을 제안한다.
 
더프 : 펑크 드러밍은 쉬운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 15살 때 나는 밴드를 3개나 했는데, 두 곳에서는 드럼을 치고, 한 곳에서는 기타를 쳤어.

첫 번째 밴드

더프 : 열다섯 살 때 한 번에 세 밴드를 했었어. 여기선 드럼을 치고, 저기선 기타를 치고 그랬지.
 
그는 베이스, 기타, 드럼 모두 합쳐서 30~31개 정도의 밴드를 했다고 한다.
 
더프 : 그때 동시에 여러 밴드를 병행해서 어느 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드럼으로 공연하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포틀랜드로 히치하이킹해서 또 공연을 하는 삶을 살았어.
 
물론 대부분이 한두 번 정도만 공연하는 밴드였지만, Fastbacks, 10 Minute Warning, Veins, On the Rocks 그리고 Crisis Party 같은 밴드는 그런 단발성 밴드가 아니었다. Fastbacks는 레코드를 녹음하고 시애틀 신드롬이라는 음반에 수록했으며, Veins는 싱글 앨범까지 발매한다.
 
더프 : 내 첫 번째 싱글은 Veins라는 밴드에서 나왔어. Vain이랑 헷갈리면 안 돼! 79년에 나온 건데, 거기서는 베이스를 연주했지. 그리고 Fastbacks 밴드 싱글에서는 드럼을 쳤어. 15살인가 16살이었나. Fartz라는 좀 유명했던 하드코어 펑크밴드에서도 드럼을 쳤었어.

Fartz라는 시애틀 밴드에 있었는데, 우리는 돈도 없었고 연주하는 곳은 별 볼 일 없었어. 그래도 1982년에 The Rocket(시애틀 음악 신문) 표지도 장식했어. Fartz는 10 Minute Warning으로 바뀌었고, 건즈의 유럽투어에서 사운드가든이 오프닝 공연을 맡았을 때 그 밴드의 멤버 둘이 와서 나 보고 10 Minute Warning이 자기들한테 영감을 줬다고 했어.
 
1982년 영국 펑크 밴드인 The Angelic Upstarts가 북미 투어를 하며 시애틀을 다녀간다. 더프는 그 밴드의 드러머로 합류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거절한다.
 
더프 : 그건 어떻게 알았어? 걔네가 내 친구들을 알고 있었고, 난 그 밴드의 모든 노래를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한테 함께하자 한 건데, 나는 거절했지. 영국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그닥 마음에 안 들었거든.

학교, 취미 그리고 경범죄

더프는 루스벨트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10학년 때 중퇴한다.
 
더프 : 나는 좋은 성적을 받고 있었지만,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GED(검정고시)시험을 치르고 10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어.

엄마한테 '학교 그만 다닐래. 배워야 할 건 다 배웠어. 그냥 내 길을 가고 싶어.'라고 말했어. 그리고 엄마는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고 하셨지.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더프는 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더프의 취미 중 하나는 스키였다. 그는 K2 스키팀에 뽑힐 정도로 잘했다고 한다.
 
더프 : 어렸을 때 운동을 잘했었어. 축구, 야구, 농구를 했었고 세 가지 다 잘했었어. 근데 9학년이 되니까 운동하는 게 싫더라고.
 
그의 또 다른 취미로는, 차 훔치기가 있다. 라이프 매거진에 따르면 그는 총 133대의 차를 훔쳤다고 한다. 또 그는 마약을 일찍 시작했는데, 4학년 때는 대마를 7학년 때는 코카인을 했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로 떠나다

1983년에 더프는 10 Minute Warning의 그렉 길모어와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더프 : 왜 내가 멋있고, 안전한 시애틀을 벗어났냐고? 안전하고 멋있고 편안해서 떠났어. 뉴욕이랑 LA 중에 고민하다가 동전을 던졌고, 결국 LA로 가게 되었지.

내가 고향에서 펑크 밴드를 한 79년부터 84년까지 시애틀엔 헤로인이 넘쳐났어. 모두가 마약 중독자였어. 그리고 거긴 연주할만할 클럽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어! 그 시기에 시애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할리우드로 갈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어.
 
떠나기 전 날 더프는 기타에서 베이스로 전향하기로 결심한다.
 
더프 : LA로 가기 전에는 기타리스트였지만, 거기엔 기타 치는 놈들이 엄청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리고 스스로가 정상급이 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내 말은 난 슬래쉬같이는 못될 거라는 거야. 드럼을 치기에는 내 드럼 세트가 구렸거든. 그래서 베이스랑 베이스 앰프를 들고 LA로 향했지.

LA로 갔을 때 솔직히 기타를 치고 싶었지만, 수만 명의 잉베이랑 조무래기들이 있었어. 그런 기타는 별로 치고 싶지 않았고, 조니 썬더스 같은 걸 더 좋아했었어. 그 당시에는 드럼을 제일 잘 치긴 했는데, 드럼 세트가 너무 구려서 팔고 베이스를 샀어.

LA씬에 발 들이고 싶었고, 베이시스트는 항상 부족하단 걸 알았어. 난 싸구려 드럼킷이랑 작은 마샬 콤보 앰프 그리고 해머 더블 컷어웨이 주니어 기타를 가지고 있었어. 좋은 기타였지만 망가졌고, 마샬은 도둑맞았고, 드럼 세트는 엉망진창이었지. 그래서 난 남아있는 모든 걸 저렴한 베이스랑 작은 앰프로 바꾸고 움직였어. 그 당시엔 다시 기타나 드럼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베이스의 진가를 알게 됐지.
 
더프는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고 밴드에 들어가기 전, Black Angus(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일했다고 한다.

 

Fastbacks의 더프

1970년대, 액슬의 인디애나 친구들

 
건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액슬의 인디애나 친구는 당연히 이지 스트래들린이다. 둘은 학교에서 만났다.
 
액슬 : 나는 곡을 쓰고, 키보드를 쳤어. 다들 내가 자기들보다 더 잘 부른다고 생각해서 내가 노래를 부르게 됐어. 노래하는 건 좋아했지만, 불안정했기 때문에 좀 바보같이 느껴졌어.
 
또 다른 액슬의 인디애나 친구로는 나중에 건즈에 들어오는 폴 휴즈가 있다.

액슬 : 내 친구 폴이 자기 차에 날 태우고, 나는 다른 차로 뛰어 넘어갔어. 친구 아빠가 길 건너편의 집에서 뛰쳐나오더니, 누가 날 죽이려는 줄 알았는지 내 친구를 쏘려 하더라고. 정말 재밌는 밤이었어.
 
그리고 마이크 스태그, 데이브 랭크, 로저 마일리가 있다. 아래는 액슬이 데이브에 대해 한 말이다.

액슬 : 세상에게 가장 오래된 친구야. 우린 같이 자랐고, 한 사람이 반으로 나뉜 것 같아. 다른 엄마한테서 태어난 쌍둥이지.


슬래쉬의 어린 시절

 
슬래쉬는 1965년 7월 23일 영국 스토크 온 트렌트에서 사울 허드슨으로 태어났다. 그는 애쉬라는 남동생이 있다.
 
슬래쉬 : 영국에 계신 할머니가 일요일 아침마다 날 교회로 끌고 갔었어. 난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

아버지인 앤서니는 영국 국적의 백인이고, 어머니 올라는 미국 국적의 흑인이었다.
 
슬래쉬 : 우리 조부모는 아빠를 싫어했고, 아빠 역시 조부모를 싫어했어. 아빠가 옆길로 세서 흑인 여자랑 결혼했기 때문이었지. 가족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그래픽 아티스트가 돼서 자유롭게 생활하기로 결심하신 거야.

아버지는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조니 미첼의 'Court and Spark'와 존 레논의 앨범커버를 맡았다고 한다.
 
슬래쉬 : 초기 조니 미첼이랑 닐 영, 크레이지 호스의 앨범 커버 등등 여러 가지를 했어. 또 누가 있더라... 많은 사람이랑 일한 건 알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조니 미첼이랑 닐 영뿐이야.

엄마는 'The Man Who Fell to Earth'에서 데이비드 보위 의상을 제작했고, 존 레논, 다이애나 로스의 의상 디자이너로도 유명해.
 
부모님의 직업 때문인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명인사들을 많이 만났다.
 
슬래쉬 : 조니 미첼도 많이 만났고. 데이빗 보위도 알아. 엄마가 그의 옷을 담당했었거든. 어렸을 때 키스 문도 만났었어. 또 누가 있지... 근데 부모님의 지인이었으니까 나랑 직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은 없어.
 
그는 그의 어머니를 '정말 행복한 샌프란시스코 히피'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자유로운 히피 정신은 어린 슬래쉬에게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슬래쉬 : 우리 부모님은 날 나체로 만들었어. 절대 잊지 못할 생일파티를 했는데. 6살도 안 되었을 때였지만 무척 당황스러웠어. 거기 있는 어른들은 모두 다 벗은 채로 수영장 파티를 즐기고 있었어. 부모님은 내 옷을 다 벗기고 애들이 있는 수영장으로 내보냈는데, 걔들도 다 벗은 채였어!
 
70년대에 앤서니와 올라는 갈라섰고, 11살 때 슬래쉬는 어머니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사 간다. 사실 이건 슬래쉬가 5살 때 일어난 일이다. 또한 올라가 먼저 가고, 나중에 앤서니와 슬래쉬가 따라간 것이다.
 
슬래쉬 : 어렸을 때 LA로 갔어. 그리고 크리스마스엔 영국으로 돌아갔지.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어. 미국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TV에서 킹콩을 본 거야. 영어를 쓰는 방식도 너무 달랐고, 음식도 달랐지만 모두들 착하게 대해줬어.
 
후에 슬래쉬는 영국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본인은 스스로를 영국인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영국에서 보낸 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어린 슬래쉬는 갑자기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슬래쉬 : 난 영국에 살 때 겉돌았어. 항상 긴 머리였고, 구멍 난 청바지를 입고 다녔거든. 다른 애들이랑은 좀 달랐지. 보통 미취학 애들은 그런 걸 입고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그러다가 LA로 이사 갔는데, 꽤 열악한 지역에서 살았어. 그래도 나름 괜찮은 학교에 다녔는데, 거기서도 좀 따돌림당했지.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난 거기서 적응하지 못했어. 우리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과는 완전 다른 분들이었으니까. 알다시피 느슨하고 그런 분들이셨지. 그래서 난 어린 시절 친구가 많지 않아. 다섯 명은 될까? 걔네도 모두 나랑 같은 처지였지.
 
슬래쉬라는 이름은 친구의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다.
 
슬래쉬 : 믿거나 말거나 내 친구 중 한 명의 아버지가 붙여줬어. 내가 그 집에 갈 때마다 날 슬래쉬라 불렀는데, 계속 그렇게 불렀어.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항상 서두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그렇다고 했어. 13살 즈음부터는 그걸로 더 많이 불린 것 같아. 심지어 우리 엄마도 날 그렇게 불렀어.
 
슬래쉬는 운동과 예술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수학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슬래쉬 : 덧셈 뺄셈 정도는 할 수 있어. 근데 행렬이랑 대수학에서 계속 낙제를 하는 바람에 엄마는 여름방학 학교에서 하는 대수학 수업에 날 보내려 했지.
 
11학년 때 하루 종일 일해서 기타를 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다. 그는 극장 가판대에서 일하거나, 시계 만드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고, 녹음 스튜디오 보조로도 일하기도 했다.
 
슬래쉬 : (가판대에서 일했던 것을 얘기하며) 페어팩스 가의 센터폴드라는 곳이었어. 그게 내 마지막 직업이었는데, 항상 전화를 하는 바람에 해고당했어. 당시에 밴드를 위해서 밤새도록 공연, 프로모션 전화를 돌렸거든. 늦게까지 사장님 없이 일했기에 가능했지.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전화를 걸었는데 내가 30분 동안 통화 중인 거야. 그래서 결국 해고당하고, 앨리슨이란 여자가 살던 아파트로 이사 갔어. 걔도 가판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한 달에 100달러만 받고 지내게 해 줬어.
 
1988년 한 인터뷰에서 슬래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슬래쉬 : 나는 낯을 가리고, 조용한 편이야. 그치만 성격이 급하지. 독서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 이건 아마 지금까지 쌓아온 내 이미지와는 완벽히 대조되는 거겠지.
 
1987년 10월, 건즈가 영국 투어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슬래쉬가 11살 이후로 만나지 않은 그의 조부모가 사는 근처를 지나갔다. 슬래쉬는 그들이 그를 보고 충격받지 않겠냐는 질문에 '아마 아닐걸. 다른 가족들도 다 미친 사람들이라''라고 대답한다.
 


건즈앤로지스 이전의 스티븐 애들러

 
스티븐 애들러는 1965년 오하이오주에서 멜과 디아나 애들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형 케네스, 켄트과 남동생 제이미가 있었고, 애들러 가족은 197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사 간다.

그는 맨 처음엔 기타를 연주했지만, 잘 안 되자 슬래쉬와 같이 개러지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 보컬 역시 잘 안 되었고, 결국 스티븐은 드럼으로 옮겨 슬래쉬와 로드 크루라는 밴드를 함께한다.

스티븐은 1988년 Frankie Valli & The Four Seasons를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 꼽은 적이 있다.
 
스티븐 : 내가 처음으로 들은 음반은 아마 포시즌스의 'Working My Way Back To You, Babe'일 거야. 난 포시즌스를 정말 좋아해! 만난 적도 있어! 프랭키 발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한번 만났고, T씨(Tommy DeVito)도 그 자리에 있었어. 진짜 최고였어! 다섯 살 때부터 포시즌스를 좋아했거든.

난 꽤 털털한 편이야. 어떤 일에 대해 엄청 신경 쓰지 않거든. 그리고 누굴 도울 수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거야. 난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적이 없어... 내가 알고 있는 한 말이지. 시간이 있으면 느긋하게 보내는 걸 좋아해. 쉬는 걸 정말 좋아해.
 
스티븐은 누구에게 드럼을 배운 적이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독학했다. 그의 우상은 퀸의 로저 테일러, 레드 제플린의 존 본햄, 더후의 키스 문 그리고 재즈 드러머인 진 크럽스와 버디 리치이다.
 
스티븐 : 난 평생 드럼 레슨을 받은 적 없어. 다른 드러머들을 가까이서 보고 듣는 거로 독학했어.
 
그는 뮤지션이 되지 않았더라면 배우가 되려 했을 거라고 말한 적도 있다.

건즈가 성공하기 전에 스티븐은 여러 일을 했는데, 그중에는 볼링장 청소하기, 설거지하기, 카운터에서 주문받기, 신문 나르기, 창고에서 일하기 등이 있다.
 


슬래쉬의 음악 외의 취미

 
슬래쉬의 취미 중 하나는 자전거 타기였는데, 래퍼인 Tone Loc이 자전거 신동이었던 슬래쉬에 대해 말한 적 있다.
 
Tone Loc : 그는 나랑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친하진 않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는 대단한 자전거 선수였고, 자전거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앞바퀴를 들고 탄다든지, 공중으로 뛰어오르기 등등의 온갖 것을 하고 다녔다. BMX랑 몽구스를 타던 진짜 굉장한 라이더였던 걸로 기억한다.
 
슬래쉬의 친구인 마크 캔터 역시 이에 대해 말했었다.
 
마크 : 1978년쯤 우린 자전거를 탔는데, 슬래쉬의 묘기는 시대를 앞서있었다. 완전 스타였고, 걔가 자전거로 점프를 할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었다.
 
또한 슬래쉬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는데, 조니 미첼의 미발표 책 'The Bestiary'에 동물 삽화를 그렸다고 한다. 후에 슬래쉬는 마크의 책 'Reckless Road'에도 나와있는 다양한 밴드 포스터를 그리기도 한다.
 
트레이시 : 슬래쉬는 건즈에 들어가기 전에 건즈 로고를 생각해 냈어.
 
슬래쉬 : 뮤지션이 안 됐더라면 아마 일러스트레이터나 아티스트가 됐을 거야. 기타 치기 전에 여러 일을 했지만, 그래도 항상 만화를 그리거나, 밴드 로고 같은 걸 그렸어.

기타를 치기 전엔 일러스트레이터였어.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그만뒀지.
 
어렸을 때부터 슬래쉬는 동물을 좋아했는데, 그의 유명한 뱀 사랑 역시 일찍이 시작되었다.
 
슬래쉬 : 파충류, 공룡 그리고 괴물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 런던에 살았을 때 난 수정궁에 가는 걸 정말 좋아했어. 큰 공원에 진짜 실물 크기의 공룡이 전시되어 있었어. 물론 그 모형은 정말 잘못된 것이지만. 어쨌든 난 계속 거기 가서 그 모형들을 구경했어.

캘리포니아로 이사 가면서 뱀이랑 파충류를 기르기 시작했어. 샌프란시스코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가 시골이어서 앞마당에서 가터뱀을 잡곤 했어. 케이지에 가득 가터뱀을 넣어 둔 게 기억나네.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 즈음엔 한 300마리 정도 잡아서 넣어두었던 것 같아. 진짜 예뻤어. 그 이후로 항상 뱀을 길렀고, 연구하고 많은 걸 배웠어.
 
1984년 혹은 85년쯤 슬래쉬는 액슬과 같이 산 적이 있었다.
 
슬래쉬 : 우리 집에 액슬이 얹혀 산 적이 있었는데, 동시에 보니라는 작은 비단뱀도 살고 있었어. 뱀들은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있었고, 뱀들이 있는 케이지는 조그만 구멍 하나가 나 있었어. 걔들은 가끔 그 구멍으로 밖에 나와서 침실까지 오곤 했는데 뭐, 별일 아니었어. 그러던 어느 날, 액슬은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고, 난 새벽 4시쯤 잠에서 깼지. 자고 있는 액슬 바로 옆에 뭐가 움직이고 있는 걸 봤어. 바로 액슬을 깨우고 "액슬, 움직이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말했어. 뱀은 정말 액슬 가까이 있었고, 그냥 거기 가만히 있었어. 액슬은 뱀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었지. 그러니까 걔는 뱀이 절대 자길 물지 않을 거란 걸 몰랐어! 나는 계속 "움직이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라고 말했고. 한 한 시간 정도 그러고 있었나. 그 뒤로 액슬은 절대로 바닥에서 자지 않았어.
 
슬래쉬의 또 다른 취미는 독서다.
 
슬래쉬 : 책 읽는 걸 좋아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책이었어. 헤밍웨이의 해류 속의 섬도 읽었는데 지루했어. 그리고 난 책을 읽고 나면 아무 데나 던져놓는다는 안 좋은 습관이 있어.

셀린(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정말 최고였어! 내가 읽은 것 중에 가장 인생을 쓰라리고,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을 거야.
 


슬래쉬, 음악에 둘러싸여 자라다

 
부모님 모두 음악산업에 종사하셨기에 슬래쉬는 음악 중심의 가정에서 자랐다.
 
슬래쉬 : 우린 엄청난 음반 컬렉션이 있었어. 16피트(약 5m)쯤 되는 벽이 음반으로 꽉 차 있었었지. 난 음악을 좋아했어. 하루 종일 더후, 조니 미첼, 롤링스톤즈, 크림, 데릭 앤 도미노스, 데이비드 보위, 비틀즈 등을 들었어. 하지만 당시 나는 뮤지션이 될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

이틀에 걸쳐 열린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었는데, 콜리세움에서 두 번의 공연이 있었어. 에어로스미스, 반 헤일런, 칩 트릭 등 많은 밴드가 왔었어. 이 공연은 내가 처음 가본 대규모 공연이었어.
 
슬래쉬 : 할머니가 클래식 피아니스트셔서, 내가 멋지고 단정한 피아니스트가 되길 원하셨어. 10살인가 11살쯤 피아노 레슨을 받긴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어. 그래도 할머니께 클래식 음악을 배웠고, 많은 도움이 됐어.


슬래쉬와 스티븐 애들러가 만나다

 
스티븐 애들러와는 밴크로프트 주니어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그들의 첫 만남은 스티븐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넘어진 것을 본 슬래쉬가 스티븐이 다쳤는지 확인하려 다가간 것이었다.

슬래쉬 삶의 터닝포인트는 스티븐이 슬래쉬가 싫어한 키스의 음악을 틀었을 때 왔다.
 
슬래쉬 : 스티븐은 자기 방에 앰프를 가지고 있었고, 걘 키스의 모든 음반을 가지고 있었어. 완전 키스에 미쳐있었지. 키스 음악을 들으러 스티븐네 집에 들락거렸는데, 스티븐은 항상 키스의 노래를 틀어놓고 일렉기타를 갈겼어. 정말 형편없었지만 나는 그 소리에 들떠서 밴드를 하고 싶어 했어. 스티븐은 나보고 베이스를 연주하라 했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리드기타랑 리듬기타의 차이점도 몰랐고, 베이스랑 기타의 차이점도 몰랐어.
 
스티븐 : 난 기타랑 작은 앰프를 갖고 있었고, 슬래쉬를 우리 할머니 침실로 데려가서 키스 음반을 틀고, 에이스(키스 기타리스트) 포즈를 지으면서 코드 하나랑 스케일을 보여줬지.
 

슬래쉬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사건

슬래쉬 : 14살 때 좋아했던 여자의 집에 잠깐 산 적이 있었는데, 걔가 에어로스미스 노래를 연주해 줬어. 그걸 한 여덟 번 정도 듣고 나니까 그 애에 대해선 다 잊어버렸지.


슬래쉬, 기타리스트가 되다

 
스티븐에게 영향을 받아 슬래쉬는 악기를 배우자는 결정을 내리고, 어떤 악기를 칠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은 채로 선생님을 찾아간다.
 
슬래쉬 : 연주를 하기 위해선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내 악기도 없었고, 정말 아는 게 없었어. 그냥 악기 없이 레슨을 받으러 갔는데 선생이 나보고 베이스랑 기타 중에 고르라 했어. 그래서 뭐가 다르냐고 물어봤지. 기타에는 줄이 더 달려있다는 말에 끌려서 기타를 골랐지. 그리고 다시 레슨을 받으러 가지 않았어.

처음엔 베이스로 시작했는데, 해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닌 것 같아서 기타를 잡았어. 기타엔 더 많은 줄이 달려있었고, 내가 기타에 흥미를 갖게 해 준 사람이 'Stairway to Heaven'을 연주하는 걸 보고, '이거다!'라는 생각에 독학했어.

베이스에서 기타로 바꾸니까, 기타를 치던 스티븐도 드럼으로 전향했어. 그렇게 시작한 거야.
 
슬래쉬의 첫 기타는 중고로 팔던 한 줄짜리 스페인 기타였다.
 
슬래쉬 : 그렇게 구리진 않았지만, 줄이 하나밖에 없었어. 나는 기타에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 한 줄로 UFO, 에어로스미스 등 많은 노래를 독학했어.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레슨을 받으러 그 기타를 가지고 갔을 때 선생은 날 쳐다보면서 다른 기타가 있냐고 물었지. 난 진짜 기타를 치기까지 좀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다가 슬래쉬는 할머니께 괜찮은 기타를 받는다.
 
슬래쉬 : 결국 할머니가 저렴한 어쿠스틱 나일론 기타를 사주셨어.
 
슬래쉬가 할머니께 받은 기타는 익스플로러 카피 모델이었다. 그다음 기타는 멤피스 레스폴이었는데 조율 유지가 제대로 안 됐다고 한다. 이후 할머니가 비씨 리치 모킹버드를 사주셨다고 한다.
 

레슨을 받다

슬래쉬 : 제대로 된 기타가 생겼으니까 이걸 들고 선생님한테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처음엔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어. 기타 스케일 책을 봐도 뭔지 몰랐지.

선생님은 관심도 없는 기타의 기초부터 가르쳐줬어. 에어로스미스나 칩 트릭 같은 걸 바로 치고 싶어서 난 레슨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어.

그 당시 레슨 선생님은 나한테 큰 도움이 되었어. 그는 매일 밤마다 클래식 락을 연주하는 밴드를 하고 있었고, 정말 놀라운 연주자였어. 리드기타와 리듬기타의 차이점을 알려주었고, 음반에서 듣는 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연주해야 하는 지를 알려줬지. 정말 재밌었어. 내가 음반을 가져가면 그걸 그 자리에서 바로 배웠거든.
 
슬래쉬는 레슨을 그만두고 독학하기 시작한다.
 

모든 걸 그만두고 기타에 집중하다

슬래쉬 : 레슨을 그만둔 시점부터 내 인생은 기타를 연주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어. 기타를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기타 릭을 배우고, 다른 기타를 사려고 돈을 버는 등...

학교를 때려치우고 종일 기타를 치는 지경에 이르렀어. 제프 백처럼 되고 싶었는데, 'Cause We've Ended As Lovers'라는 곡을 외웠던 게 기억나. 에어로스미스, 테드 누젠트, 칩 트릭 그리고 레드 제플린을 엄청 연습했지. 그때 난 기타에 영혼을 팔았어.

난 정말 외골수라 하나에 빠지면 그것만 해. 그래서 기타에 빠졌을 때 학교를 그만뒀어.
 
한 잡지에 따르면 슬래쉬는 1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고,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일을 해서 기타를 쳤다고 한다.
 
슬래쉬 : 학교를 다닐 때 난 장발이었지만, 학교엔 은행원과 부동산 중개업자의 자녀들로 가득 차 있었어. 그중 단 한 명도 나랑 비슷한 애가 없었지.

기타를 치기 전까진 정말 혼자 다녔거든. 그래서 기타에 집중하기가 쉬웠어. 근데 기타를 시작하니까 갑자기 내 주위에 사람들이 생겼지. 정말 이상하지?
 
슬래쉬는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기타와 여러 장비들을 샀는데, 첫 기타는 B.C. Rich Mockingbird(비씨 리치 모킹버드)였고, 그 뒤로 59년 스트라토캐스터와 69년 레스폴 블랙뷰티를 산다.
여러 밴드를 하면서도 모킹버드는 항상 슬래쉬가 아끼는 기타였지만, 나중에 마약 때문에 팔게 된다.
 
슬래쉬 : 인터뷰에서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는 건데, 내 첫 기타는 빌 로렌스 픽업에 쓰루 넥이었던 모킹버드였어. 정말 좋은 기타였고 그걸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지. 그런데 마약 때문에 저당 잡혔고 다시 가져오지 못했어. 난 그런 짓을 한 나 자신을 절대 용서 못 해.

모킹버드를 다시 갖고 싶어. 정말 좋은 소리를 내는 기타였어. 언젠가 그걸 팔았고 되찾지 못하고 있어. 재밌는 건 조 페리의 부인이 판 조의 기타를 내가 갖고 있다는 거야.
 
슬래쉬가 뮤지션이 된 건 고심 끝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슬래쉬 : 그냥 어쩌다가 시작했고, '언젠간 유명해지고 말 거야'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어. 그냥 기타를 쳤을 뿐이고, 그냥 부지런하게 연주했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