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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건즈 이전

LA의 액슬과 이지

1979~84년, 액슬 로즈가 되다

 

17살이 되던 해, 액슬은 보험 서류와 어머니의 졸업장을 보고 윌리엄 로즈라는 친아버지 존재를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의 이름 역시 윌리엄 로즈였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그 후 이름의 윌리엄을 W로 바꾸는데, 1991년 한 인터뷰에서 액슬은 친아버지의 이름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디애나에서 액슬이 몸담았던 밴드의 이름은 AXL이었는데, 나중에 그 밴드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액슬이라고 지었다.

 

액슬 : AXL이라는 밴드를 한 적이 있었어. 사람들이 너는 AXL처럼 살고, 숨 쉬고, 걷고, 말하는데 왜 AXL이 아니냐 하더라고.

 

'AXL'은 내 친구 데이브가 지은 밴드 이름이었어. 데이브 랭크, 마이크 스태크 그리고 로저 마일리라는 친구들이랑 밴드를 같이 했었지. 우린 항상 밴드 이름을 뭘로 할지 고민했었는데, 하루는 걔들한테 전화가 와서 AXL이라는 이름이 어떻냐고 하더라고.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지. A-X-L.

 

이지의 제안으로 나는 액슬이 됐어. 걔가 액슬이라는 이름이 나랑 잘 어울린다면서 왜 액슬이 되지 않는 거냐는 식으로 말했고, 난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액슬이야"라고 말했지.

 

마이크 스태그는 나중에 AXL에 대해 말하면서, 액슬이 그 이름을 썼을 때 화가 났다고 농담조로 얘기한 바 있다.

마이크 스태그 : AXL은 내가 데이브 랭크랑 로저 마일리랑 했던 밴드의 이름이었고, 내가 생각해 낸 이름이었어. (공연은 안 했지만) 캘리포니아로 가자마자 빌이 그 이름을 써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우린 거절했어. 근데 도착하자마자 법적으로 이름을 바꾸더라고. 로즈는 걔 친아버지 성이야. 어쨌든 우린 화가 났었어!

 

액슬의 개명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친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양아버지와 거리를 두기 위해 '윌리엄 로즈'가 되었고, 그 후 자신을 아티스트로 여기면서 자신의 밴드 이름을 빌려 액슬을 추가. 마지막으로 친아버지의 본성을 알게 되고 윌리엄을 W로 바꾸어 'W. 액슬 로즈'가 되었다.

 

액슬 : 빌이라는 이름은 오래전에 버렸어. 친아버지 이름을 따서 개명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야. 내 속에 있는 아이에게 이름이 있다면 걔 이름은 윌리엄이 아니라 빌일 거야. 근데 뭐, 난 지금 액슬이니까.


1980~85년, 할리우드의 이지

 

1980년 이지는 인디애나를 떠나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처음 정착한 곳은 헌팅턴이었다.

 

The Naughty Women

라파옛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온 지 사흘도 안 돼서 이지는 The Naughty Women이라는 밴드에 들어갔다. 그들은 베이시스트 부모님 집에서 일주일간 리허설을 한 뒤 첫 공연을 했다.

 

이지 : 난 그때 차랑 드럼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뭐 밴드에서 중요한 역할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무대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얘네들이 완전 드랙 복장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립스틱에 아이라이너에 분홍색 스판에, 부풀린 머리카락까지... 나도 이 밴드 소속이잖아! 근데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해준 거야. 그리고 공연장은 난장판이었어. 3곡 정도 치고 나니까 갑자기 스킨헤드들이 무대로 올라와서 우릴 때렸지. 난 심벌 스탠드를 몇 번 휘두르다가 뒷문으로 나갔어.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부터 난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날 좋아하든 말든 아무 신경 쓰지 않게 됐어. 어쨌든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생각해.

중서부를 벗어나서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 바로 무대 위의 우리는 긴 머리카락이었는데 관객들은 하나같이 다 머리카락이 없었다는 점이었지. 우린 뉴욕 돌즈 같은 펑크 드랙 밴드였고, 보컬은 분홍색 스판 점프슈트에 탱크톱을 입고 화장을 두껍게 한 못생긴 남자였지. 그리고 우리도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어.


이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들이 스킨헤드란 걸 알게 됐는데, 걔들은 우리를 싫어했어. 맥주병을 던지고 침을 뱉었지. 무대로 올라와서 기타 치는 애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앰프도 부수고, 보컬을 두들겨 팼어. 그게 내 The Naughty Women 밴드의 첫 번째 공연이었어.

일요일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고, 수요일쯤 난 이미 밴드에 들어가 있었어. 막 인디애나에서 올라온 상태여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지. 아마 내가 차를 가지고 있어서 로드매니저 겸 들어간 것 같아. 4일 동안 같이 리허설을 하고, 내 차에 모든 장비를 실었지. 그 당시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은 체로키 머리(모히칸 스타일을 말하는 듯)를 하고 있었고, 탈의실에서 나오는 우리 밴드 애들은 여자애 같은 모습이었어. "이게 뭐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 우린 6~7곡밖에 할 수 없었고, 관객들은 무대로 올라와서 난동을 부렸어. 꽤 흥미진진한 상황이었지.

더프 : 리허설이 끝난 어느 밤이었는데, 이지는 Naughty Women이라는 밴드에 대해서 말했어. 나는 뭔가 떠올라서 "나 알 것 같은데, 그니까 나 같이 공연한 적 있는 것 같아. 잠깐만 그 드랙 복장 맞나?"라고 말했지. 이지는 맞다면서 자기가 드러머였다고 했지. 멋있다고 생각했어, 이지는 정말 펑크록 신의 베테랑이었어.

 

트레이시에 의하면, 밴드 이름은 The Babysitters였고 이지가 드레스를 입었다고 한다.

 

The Atoms

The Naughty Women에선 두 달 정도 활동하고, The Atoms라는 밴드에 들어간다.

 

베이스로 전향하다

The Atoms에서 이지는 드럼을 도둑맞아 베이스로 전향한다.

 

Shire

The Atoms 이후 스콜피언즈 같은 Shire에 들어가지만, 1983년 나온다.

 

기타로 전향하다

이지 : 뭐라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갔어. 내가 좋아하고 연주하고 싶은 음악은 기타로 치는 게 더 나았거든. 난 항상 라몬즈 같은 음악에 빠져있었어. 매끄럽지 않은 소리도 좋았고. 그래서 이 레스폴을 가지게 됐지. 바레코드 소리가 정말 좋아. 그리고서 친구의 깁슨 LG5를 받았어. 영원히 라몬즈를 연주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 그 뒤에 깁슨 블랙뷰티를 가지게 되었어.

 

인디애나에서 온 친구가 3개월 동안 기타를 빌려줬었어. 작은 앰프로 혼자 쳤는데, 기타를 치는 게 더 멋있어 보였고 작곡하기 더 쉬워 보였어.

(1998년 인터뷰) 드럼으로 시작해서 기타를 치게 됐는데, 흥미는 전혀 없어. 그냥 필요에 의해서 시작하게 된 거지. LA에 살 때 드럼 세트 중 몇 개를 도둑맞았고, 차가 고장 나서 돈이 필요했고, 그러다가 베이스를 연주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기타로 전향했고. 항상 관심은 있었어. 친구들이 칠 때 한 번씩 빌려보다가, 결국 (기타를) 사게 됐지. 그게 다야. 그래도 난 기타보다 드럼을 더 많이 쳐.

길비 : 이지는 훌륭한 드러머는 아니었어. (웃음) 그래서 기타를 치는 게 더 나은 선택인 것 같아.

 

할리우드에서 액슬과 이지가 만나다

이지는 액슬을 로스앤젤레스로 불렀고, 그다음 해인 1981년 두 사람이 재회한다.

 

이지 : 액슬은 다 젖은 채로 가방을 메고 문 앞에 서 있었어. 한 달간 날 찾고 있었대. 아마 여기가 얼마나 큰 곳인지 몰랐던 것 같아.

 

당시 이지는 헌팅턴 해변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쁜 습관이 들다

1984년, 이지는 룸메이트를 통해 가루로 된 페르시안 헤로인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중독 돼버렸다.

 

1984~85년, 이지는 원래 직업도, 차도, 돈도 없다는 의미로 'Izzy Stranded(이지 스트랜디드)'였지만 너무 우울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Izzy Stradlin(이지 스트래들린)'으로 바꾼다.

 

할리우드에서의 삶

1981년, 19살이던 해에 이지는 후에 'Pretty Tied Up' 가사에 영향을 준 한 경험을 한다.

이지 : 멕시코 친구 토니가 날 마고라는 여자의 집으로 데려가 소개해줬어. 그 여자가 우리한테 데킬라 같은 걸 줬어. 여자를 따라서 침실로 들어가 보니 어떤 뚱뚱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로 입엔 양파를 문 채로 있었어. 여자 속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는 덕 테이프로 벽에 꽁꽁 묶여 있었지. 나랑 토니는, '이게 씨발 무슨 일이야?' 이 상태였어. 여자는 도미나트릭스였어. 우린 오후 내내 거실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고, 그 여잔 침실로 가서 자기 일을 했지. 하루가 끝나갈 때쯤, 남자를 풀어주고 돈을 받았어. 그리고 우릴 데리고 나가서 밥을 사 줬지. 그게 그 당시 SM 클럽에서 일하던 도미나트릭스들의 모습이야. 남자들을 때리는 일이 끝나면, 뮤지션을 데리고 저녁을 먹는 거. 가끔은 집에 머물게도 해줬어.

비슷한 시기에 이지는 기타 가게에서 일한다. 또 액슬과 함께 UCLA의 흡연 실험에 참여한다.

이지 : 하루는 '흡연자 구함. 한 시간에 10달러'라 쓰인 종이를 보고, "미친, 존나 쉽잖아. 어차피 맨날 하는 일인데."라고 말했어. 그리고 우린 거기로 갔어. 물론 액슬은 그만뒀어.

1992년 9월 그는 건즈에서 나오고, 예전에 기타를 사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지 : 얼마 전에 아빠한테 이렇게 말했어. "아빠! 전에 내 기타 보고 뭐라 했던 거 기억나? 내가 이걸로 얼마를 벌었을 것 같아?"라고 말이야.


1981~83년, 액슬 인디애나를 떠나다

 

17살의 액슬은 멀리 떠났다. 떠나게 된 이유에는 가족과의 갈등과 법률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로 가기 전, 미국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그중에는 세인트 루이스도 있었다.

 

액슬 : 세인트 루이스! 할 말이 또 있지. 17살 때 인디애나를 떠났어. 35달러 정도를 갖고 버스를 타서 세인트 루이스로 갔지. 멋졌어. 아치(세인트 루이스 대표 건축물) 주변에서 마리화나도 태우고, 가까운 고속도로로 가서 에어컨 수리기사 밴에 탔어. 모든 게 즐겁고, 안전해 보였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았지. 한 번도 혼자서 마을에서 나온 적 없었기 때문에 엄청 지쳐있었어. 그리고 망할 호텔로 갔는데, 그 남자나 나나 다 지쳐서 쓰러졌지. 그리고 잠에서 깼는데 그놈이 날 덮치려 하는 거야. 경정맥을 그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1980년 고등학교 졸업 후 로스앤젤레스로 간 이지가 액슬에게 넘어오라고 연락을 했고, 그래서 그는 1981년 이지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액슬 : 난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옥수수캔을 들고 LA에 도착했어. 모르는 사람들이 날 때리려 했는데, 어떤 흑인 남자가 날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다줬지. 그리고 풀러턴을 돌아다녔는데, 거긴 내가 본 가장 작은 도시였어. 그래서 난 이지를 빨리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한 이틀 정도 버스를 탔지만, 이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헌팅턴 해변에 잠시 머물렀었는데, 우연히 문이 열려있고 구석에 스케이트 보드가 세워져 있는 아파트를 발견했지. 그래, 바로 이지의 집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지.

이지 : 내가 먼저 LA에 왔고, 1년 뒤에 액슬이 왔어. 근데 걘 다시 미국 전역 히치하이킹 여행을 떠났지. 뭐, 다시 LA로 돌아오긴 했지만. 우린 밴드를 만들어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어.

 

액슬은 할리우드의 한 아파트에서 여자 친구인 지나 실러와 5개월 간 함께 살았으며, 지나가 이사 간 후에는 이지와 같이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