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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1986년

1986년 5~6월

1986년 5월, 'Fargin Bastydges'

 

주토트는 밴드가 공연을 하지 못하게 했다.

 

톰 주토트 : "이제 공연은 그만해야겠어"라고 말했다. 신비주의로 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노출은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이었거든. 똑같은 곡들로 수십 번, 수백 번 공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신비주의 콘셉트로 가면서, 데뷔 앨범에 넣을 새 곡들을 쓰게 하는 게 내 목표였다.

 

슬래쉬 : 계약을 하고 나니 회사는 우리가 공연하는 걸 탐탁지 않아했다. "아무데서나 막 공연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 공연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문제였다. 그 시간에 난 더 많은 약을 구해다 했거든.

 

이런 공연 금지령에도 밴드는 5월 1일 센트럴에서 'Move to the City', 'Don't Cry', 'Jumpin' Jack Flash'를 어쿠스틱으로 연주했다. 마크 캔터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공연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허락받았다고 한다.

 

밴드는 공연하길 원했고, 결국 'Fargin Bastydges'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름만 다를 뿐이었지, 다른 모든 건 건즈 앤 로지스였다.

 

스티븐 : Gazzarri's에서 'Fargin Bastydges'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했어. 그 이름은 마이클 키튼이 나온 갱 파티라는 영화에서 따왔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런 대사를 했거든. "You friggin' iceholes. You fargin' bastage. You cork soaker!"

 

더프 : 게펜은 공연 금지령을 내렸다. 그 이유가 뭐냐고?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지내고, 우리 공연에 프리미엄 딱지를 붙임으로써 신비로움을 쌓기 위함이었다. 이미 약속해 놓은 공연이 몇 개 있음에 감사해했다. 하지만 그 공연들이 다 끝나자 우린 무대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회사 눈에 띄지 않게 'Fargin Bastydges'로 무대에 섰다.

 

Fargin Basrtydges. 건즈 로고 아래에 '누구게'라고 적혀있음


5월 13일, Raji's

 

슬래쉬 : Raji's는 완전 싸구려 클럽이었다. 가로 6m 세로 6m쯤 되는 곳이었는데 맥주와 오줌 지린내로 진동했고, 사운드 시스템이 정말 구식이었다. 무대는 낮았고, 화장실은 CBGB보다 더 역겨웠다. 공연은 더럽고, 우중충하고, 조잡하고 불안정했다. 그래서 공연 시작 전에 술을 닥치는 대로 섞어서 마시고 나갔다. 완전 엉망이 돼서 5분마다 앰프 뒤로 가서 속을 게워냈다. 새로 온 기타 기술자인 제이슨은 내 토사물을 피해 계속 움직여야 했다. 공연장의 열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폭한 사람들로 가득해서 그들을 어떻게 다루기 힘들었고, 결국 액슬은 맨 앞에 서있던 남자와 싸웠다. 공연은 폭동에 가까웠고, 그 작은 공간은 엄청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끝내줬고, 그때 사진은 AFD 앨범의 부클릿에서 볼 수 있다.

 

액슬 : 'You're Crazy'의 원곡에는 그 어떤 악담도 없었어. 그 공연에서 어떤 여자애가 날 맥주병으로 치려고 하기 전까진 말이야. 나는 하지 못하게 마이크 스탠드로 저항했어. 그런데도 계속 다가오더라. 진짜 모르는 사람이었어! 결국 더프가 한 대 맞았어. Raji's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날 게펜 사람들이랑 폴 스탠리가 보러 와있었어.

 

마크 캔터 : 공연 내내 한 여자가 액슬 얼굴을 향해 맥주를 뿌렸고, 그것 때문에 액슬은 감전된 것 같아 보였어. 첫 곡이 끝날 때엔 병을 집어던져서 보다 못한 액슬이 마이크 스탠드로 그녀를 밀어냈고. 공연이 끝났을 때 그 사람이 액슬한테 와서 사과하려 했는데 액슬이 거절했어. 여자는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매달려서 사과하겠다고 했고, 액슬은 "이러지 마, 제발 내 팔 좀 놔줘"라고 말했지. 한 20분 뒤에 그 여자의 남자 친구가 왔는데, 바로 Thelonius Monster라는 밴드의 보컬인 밥 포레스트였어. 와서는 "네가 내 여자 친구 때렸냐?"라고 소리치더니 액슬한테 달려들었어. 큰 싸움이 벌어졌고, 그 누구도 섣불리 말릴 수 없었어. 포레스트가 스티븐의 드럼 스탠드를 집어 들고는 액슬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지. 눈을 보니까 마약에 취해 있는 것 같았어. 다행히 액슬이 그를 제압했고, 그제야 사람들이 끼어들어 싸움은 마무리됐어. 포레스트는 끝까지 액슬에게 욕을 날렸어. 이런 큰 싸움이 있었지만, 그 뒤에 둘은 사이가 썩 나쁘진 않았고, 건즈랑 포레스트의 밴드는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어.


건즈 앤 로지스와 폴 스탠리

 

5월 13일 : 첫 만남

폴 스탠리는 건즈의 데뷔 앨범 프로듀서 유력 후보였고, 주토트가 밴드와 폴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5월 13일 Raji's에서 공연을 하기 전 만났다.

 

폴 스탠리 : 이지는 침을 흘리고 있었고, 정신이 좀 없어 보였다. 자고 있는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더프와 스티븐은 사람이 정말 좋았고, 스티븐은 본인이 얼마나 키스를 좋아하는지 술술 말했다. 졸고 있던 슬래쉬라는 곱슬머리 기타리스트가 몇 년 전 Creatures of the Night 앨범 녹음 전에 얘기를 나눴던 녀석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액슬은 나랑 얘기를 나누며 옆에 있던 형편없는 카세트 플레이어로 몇 곡을 들려줬다. 'Nightrain'은 정말 좋은 곡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코러스를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고, 그게 액슬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지금까지도 말이지. 슬래쉬가 잠에서 깨고 그와 롤링 스톤즈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게 키스 리처드가 자주 쓰는 튜닝(five-string open-G tuning)을 보여줬다. 또 슬래쉬에게 무료로 기타를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시켜 줬다. 우린 여러 악기 회사에게 후원받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런 젊은 뮤지션이 녹음할 장비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스티븐 : 폴 스탠리는 우리 공연을 보고, 우리 앨범을 제작하는 거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가 주토트에게 연락을 했고, 주토트가 만남을 주선했다. 난 너무 신나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안타깝게도 다른 애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권위주의적 태도 때문이었다.

 

액슬 : 폴은 프로듀싱 건으로 우릴 찾았고, 난 그와 얘길 나누면서 데모를 들려줬어.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곡들을 다시 써오길 원해서 자리는 거기서 끝나버렸지.

 

이지 :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 예를 들자면 어떤 유명한 락스타가 있었는데... 이름은 말하지 않을게. 그는 음악을 바꾸길 원했어. 'Don't Cry'라던가 코러스랑 모든 걸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5월 13일 : Raji'S

폴 스탠리 : 그날 밤 Raji's에 건즈의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 전에 봤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그 무대는 정말 충격적이었고, 대단했다. 나는 내가 대단한 걸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5월 31일 : Gazzarri's

스탠리는 밴드의 다음 공연인 5월 31일 Gazzarri's에도 간다.

 

슬래쉬 : 그를 본지 얼마 안 돼서 또 그는 우리 공연을 보러 왔다. 나중에 그 공연에서 폴이 직접 사운드보드를 조작하고 믹스했다는 걸 듣고 민망했다.

 

폴은 슬래쉬완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폴 스탠리 : Gazzarri's에 공연을 또 보러 갔어. 나중에 Key Club이 된 곳이지. 걔들은 거기 사람이 믹싱 해주는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슬래쉬가 갑자기 나한테 와서는 도와달라고 부탁했어. 슬래쉬는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는 내가 만진 사운드를 좋아했어.

 

폴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던 홀리 나이트는 이렇게 기억한다.

 

홀리 나이트 : 그날 밤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폴이 건즈를 프로듀싱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액슬이 복도를 지날 때 주변에 있었는데, 그때 액슬은 굽 있는 신발을 신고 있었고, 꽤 키가 컸으며 정말 말랐고, 붉고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폴은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액슬이 바로 우리 옆을 지나가자 난 '악마가 간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폴은 '어떻게 생각해? 내가 프로듀싱해도 될까?'라고 물었다. 난 '쟤넨 절대 성공 못할걸'이었나 그런 멍청한 답을 했다. 그날 라이브 사운드는 정말 끔찍했다. 그렇지만 액슬이 가수로써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건 확실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5월 13일. 액슬과 폴


1986년 5~12월, 프로듀서 찾기

 

밴드는 신곡을 쓰고, EP를 제작하는 동안 앨범 프로듀서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프로듀서에 대한 본인들의 생각이 확고했다. 주토트가 여기서 찾아보자며 프로듀서 명단을 줬지만, 밴드에 딱 맞는 프로듀서를 찾기 힘들었다. 더프가 말했듯이 다들 건즈의 음악을 바꾸고 싶어 했다. 원래 계획은 영국으로 가서 빌 프라이스(섹스 피스톨즈, 프리텐더스 음반 프로듀서)와 함께하는 거였지만, 잘되지 않았다.

 

빌 프라이스 : 좀 긴 얘긴데, 원래 톰 주토트한테 AFD를 제작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어. 런던 웨식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기로 말이 오가고 있었고,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 데모도 들어봤는 데 정말 좋더라고. 그런데 갑자기 게펜이 발을 뺐어. 건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좀 제멋대로고 거칠다는 평을 받고 있었고, 그래서 게펜은 그들을 자기네 시야 밖에 두고 싶지 않아 했겠지. 데이비드 게펜이 음반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들어야겠으니 나보고 미국으로 오라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어린 자식들이 있었고, 웨식스 스튜디오에 대한 책임도 있었거든. (빌은 웨식스 스튜디오의 치프 엔지니어) 이게 인생이지.(C'est la vie)

 

빌 프라이스는 후에 UYI 앨범의 믹싱을 맡는다.

슬래쉬는 잭 더글라스가 맡길 원했다.

 

슬래쉬 : 사실 난 잭 더글라스가 우리 프로듀서를 맡아줬음 했는데, 모든 멤버들이 프로듀서 건에 대해 발언권이 있어서... 결국 되진 못했어.

 

에어로스미스 'Rocks'앨범 때 잭을 알게 됐는데, 그 음반 때문에 내가 기타를 치기 시작한 거였거든. 그래서 잭이 프로듀서가 되길 원했지만, 게펜은 모두가 한 공간에 모이는 걸 좀 걱정해했어.

 

액슬은 토마스 레이 바커를 프로듀서로 원했고, 그는 나중에 Chinese Democracy 음반 제작에 참여한다.

1986년 12월까지 밴드는 게펜과 같이 논의하면서 적임자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슬래쉬 : 곡을 쓸 때 그냥 우리 곡을 쓰지,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신경 안 써. 근데 대다수의 프로듀서들은 우리 곡 느낌을 바꾸려 해서 타협점을 찾았어야 했어. 우린 그런 거 못해.

 

톰 주토트 : 건즈에 흥미를 보인 몇 프로듀서들한테 데모를 들려줬는데, 다들 물러서더라고. 액슬은 무척 까다로운 사람이었고, 이 점이 프로듀서를 찾는 걸 어렵게 했어. 액슬한테 프로듀서들 얘기를 꺼내면 액슬은 "좋아. 근데 그 사람은 이런 음반을 제작했어"라던가 "그 음반은 쓰레기야. 같이 일하긴 힘들 것 같네"라는 말을 했지. 액슬은 확고한 신념이 있었어.


1986년 6월, 매니 찰튼과 사운드 시티 데모

 

톰 주토트 : 액슬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나자레스였다. 우리 둘 다 그 밴드의 팬이었다. 나자레스의 기타리스트였던 매니 찰튼이 몇몇 음반을 프로듀싱했다는 게 떠올랐고, 액슬은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난 스코틀랜드로 가서 에든버러에 있던 그를 찾아갔다. 대화 끝에 매니는 LA로 가겠다고 결정했다.

 

매니 찰튼 : 톰 주토트가 스코틀랜드로 와서 밴드 프로듀싱에 관심 있냐고 물었다. LA로 가서 밴드를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톰이 가져온 곡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보컬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고.


LA에 도착한 다음 날 밴드의 리허설을 보기로 되어있었다. 톰이 리허설 장소로 날 데리고 갔는데 거긴 아무도 없었다. 밴드 멤버 중 단 한 명도 오지 않은 거였다. 밴드를 보러 6천 마일을 날아왔는데,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밴드는 매니와 사흘 동안 함께 했고, 그 결과물은 27곡으로 이루어진 그 유명한 사운드 시티 세션 부틀렉이었다.

 

이지 : 나자레스의 매니 찰튼과 같이 일했어. 이틀 하고도 반나절 동안 스튜디오에 있었고, 25~30곡 정도를 녹음했어.

 

스코틀랜드에서 LA를 왔다 갔다 하는 데 많은 돈을 써버렸어. 액슬은 그(매니)가 나자레스 앨범 프로듀서로 큰 공을 세웠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지. 매니가 오고, 슬래쉬랑 내가 그를 차에 태우고 다녔는데 그때 뭔 소리를 들었는지 알아? 얘들아, 이 차 마지막으로 점검 언제 했어? 였어. 미국에선 차 점검을 안 받고, 그냥 부품을 사서 고칠 수 있는데. 난 매니를 좋아하지만, 그는 너무 무서웠고, 좀 못됐어. 우린 그 스튜디오에서 72시간 동안 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녹음만 했다니까.

 

매니 찰튼 : 사흘간 스튜디오에서 나름 잘 지냈어. 스튜디오에 새로운 레스폴이랑 메사부기 앰프가 있는 걸 보고 톰이 그래도 걔넬 잘 돌보고 있다는 걸 알았지. 그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녹음한 걸 한 곡씩 다 잘라냈어.

 

다섯 명은 함께 멋진 것들은 만들어냈고, 케미는 완벽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Welcome to the Jungle'이랑 'November Rain'이었는데, 액슬이 피아노를 치고 이지가 백킹 보컬을 조금 넣었어. 정말 환상적이었지. 그때 작사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고, 정말 걔넬 프로듀싱하고 싶어 졌어.

 

톰 주토트 : 어떻게 된 일인지, 이틀이 지나고 매니는 이 모든게 미친 짓이라 생각했고, 밴드에선 매니가 본인들한테 맞는 프로듀서인지가 화두였다. 그러다 매니가 사라졌고, 처음부터 다시 돌아갔다.

 

매니 찰튼 : 난 사라진 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간 거다. 톰한테는 나자레스 일을 말했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아무 말도 못 들었고, 에피타이트 앨범이 나온 거다. 밴드 내부에서 불화가 있었다 했는데, 난 아무것도 몰랐다. 슬래쉬가 내게 아무런 인상을 못 받은 것 같다는 건 알았다. 그가 액슬만큼 나자레스를 좋아하지 않는단 건 안다. 아마 기타리스트로써 내 인상이 강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들었던 유일한 긍정적인 말은 이지가 '매니가 한건 정말 멋있다'라고 한 거였다. 난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LA에 있지 않고 스코틀랜드에 있었으니 들어본 적도 없었고. 조금 불리했다면 불리한 입장이었다.

 

안타깝게도 매니는 나자레스 일로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건즈 앨범 프로듀싱은 이야기가 잘 조율되지 못해서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2018년, 데모가 발매되다

2018년 게펜은 데모 녹음 32년 만에 AFD 슈퍼 디럭스반에 수록해서 발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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