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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1986년

1986년 1~2월

1986년 1월 4일

 
1986년 새해가 밝고, 건즈의 첫 공연은 1월 4일 Troubadour에서 열렸다.
 
라즈 큐 : 1986년 첫 번째 토요일, 건즈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Troubadour로 끌어모았어. 팬들은 건즈의 티셔츠를 살 수 있다는 것과 'My Michelle'을 처음으로 들었다는 것에 굉장히 기뻐했지. 액슬은 몇 달 동안이나 스카페이스 사운드트랙 중 일부를 밴드의 등장 음악으로 쓰고 싶어 했어. 저 공연 일주일 전 액슬은 마침내 스카페이스 비디오를 구했고, 그걸 카세트로 녹음하려고 우리 집에 가져왔어. 결국 액슬의 뜻대로 Troubadour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왔고, 모두를 흥분시킬 정도로 완벽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지. 대단했어, 액슬 로즈씨.
 
이날 공연에서 'My Michelle'을 처음 선보인다.
 

공연 포스터


밴드 초기의 작곡 방식

 
라즈 큐는 밴드가 'Welcome to the Jungle', 'My Michelle', 'Paradise City'등을 써낸 한 달이란 기간에 대해서 말한다.
 
라즈 큐 : 그 몇 달간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샘솟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젊음의 자유나 밴드 초기의 시너지 효과, 뭐 그런 것들 때문이겠지. 아니면 작곡가 웨스트 아킨을 만나서 그랬거나. 바로 옆집에 살았던 The Wild의 조니 엑스의 곡들을 바로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
 
그들이 함께 작곡한 첫 번째 곡은 'Welcome to the Jungle'이었다.
 
슬래쉬 : 액슬이 몇 년 전 우리 집에 얹혀살 때 내가 쳤던 기타 리프를 기억하고 있었어. 그게 바로 Welcome to the Jungle의 메인 리프였지. 어찌 됐든 그 곡은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작곡한 곡이었어. 리허설을 하려고 둘러앉아 있었는데 액슬의 머릿속에 그 리프가 떠올랐나 봐. 나한테 "네가 저번에 친 리프, 그거 뭐였더라?"라고 묻더라고. 같이 살 때 쳤던 거냐고 물어보니까 맞다면서 쳐보라고 했어. 내가 리프를 치기 시작하자 스티븐이 드럼으로 박자를 맞춰왔고, 더프도 합류했지. 그렇게 시작했어. 나는 리프를 치면서 코러스, 솔로 파트를 바로 만들었고, 액슬은 가사를 써냈지. 3시간 만에 노래가 완성됐어.
 
건즈 초기 시절, 이지는 어디서 영감을 얻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이지 : 라몬즈지! (웃음) 조니 라몬즈로부터 다 가져온 거야! 리프를 만드는 데 라몬즈랑 모터헤드의 영향이 컸어.
 
슬래쉬는 액슬의 가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슬래쉬 : 걘 그런 걸 잘해. 그러니까 난 그냥 기타리스트일 뿐이고, 당연히 노래나 음... 가사 같은 건 쓰지 않아. 신경도 안 써. 왜냐면 그게 액슬의 일이란 걸 알고 있고, 걔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거든. 그래서 우린 거기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가만히 앉아서 글을 끄적이면 어떤 영감도 안 떠오르거든.
 
액슬 : 슬래쉬는 정말 멋진 기타리스트고,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 그냥 그만큼 좋은 가사를 쓰려고 해.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가사가 더 눈에 띄면 바로 기타 파트를 재정비하러 가지.


조셉 브룩스가 톰 주토트에게

 

액슬 : 조셉이랑 헨리라고 하는 클럽을 운영하는 남자들이 있었어. 이지랑 아는 사이였고, 우리 밴드를 좋아했지. 그래서 그 둘이 게펜의 톰 주토트한테 우리 음악을 들려줬어.

조셉 브룩스 : 이지가 나한테 건즈 앤 로지스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했고, 축하해주면서 공연을 보러 가겠다고 했었어. 가서 공연을 몇 번 봤는데, 정말 굉장하더라고. 그래서 난 걔들 음악을 라디오에 틀고 싶으니 테이프를 달라고 했고, KROQ(LA 최대의 락 전문 라디오 방송국)에서 틀었지. 그리고 게펜의 톰 주토트한테 테이프를 주면서 Troubadour 공연을 보러 오라고 했어.

액슬은 'Don't Cry'의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P.S. THANX JOSEPH!'이라는 문구를 띄우며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액슬 : 조셉은... Don't Cry를 정말 좋아했어. 그는 Don't Cry를 레코드사에 보냈고, 그건 우리 곡 중에 최초로 레코드사에 보내진 곡이었어. 정말 감사한 일이지. 그래서 그 뮤직비디오에 그렇게 써놓으면 영구적일 거라고 생각했어.

또한 이 일로 조셉은 1992년 3월에 나온 건즈의 공식 팬클럽 회지에도 이렇게 언급된다.
'조셉 브룩스는 하드 락 클럽의 DJ로, 건즈의 음악을 클럽에서 틀어줌으로써 LA씬에 우릴 알렸다. 그는 레코드사에 'Don't Cry'를 보냈고, 그래서 우리는 'Don't Cry' 뮤직비디오에 문구를 띄워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게펜 레코드의 톰 주토트

브룩스가 밴드의 데모를 건네준 톰 주토트는 게펜 레코드 신인 발굴팀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이전에 머틀리 크루와 메탈리카를 엘렉트라 레코드에 데려온 적도 있었다.

톰 주토트 : 머틀리 크루와 계약을 하고 오 년쯤 지났을 때 어떤 레코드 가게에 갔는데, 직원이 LA에 머틀리보다 더 나은 밴드가 나왔다면서 분명히 마음에 들 테니 보러 가라고 했었어. 그래서 "걔네 이름이 뭔데?"라고 물었고, "건즈 앤 로지스"라고 답하더군. 그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어.


1986년 1월 18일, 록시 공연

 

톰 주토트 : 차로 선셋 대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길가에 붙여져 있는 포스터를 봤어. 슬래쉬가 그린 거였는데 권총이랑 장미가 그려져 있는 걸 보고 속으로 '존나 멋있네, 진짜'라고 생각했어. 차를 세우고 붙어있던 포스터를 떼서 왔지. 사무실에 가서 조수한테 이 밴드가 뭐 하는 밴드인지, 언제 어디서 공연을 하는지 알려달라 했어.

조셉 브룩스 : 건즈는 LA Guns랑 같이 Roxy 공연이 예정되어있었어. 톰도 이 공연을 보러 왔지.

더프 : 1986년 1월 18일 Roxy 무대에 올라가기 전, 친구 한 놈이 백스테이지로 오더니 "매진이야!"라고 소리쳤어. 관중들을 봤을 때, 많이 봐왔던 얼굴들이 보였어. 웨스트 아킨, 마크 캔터 같은 친구들 말이야.

라즈 큐 : 비키 해밀턴은 그녀가 건즈를 맡고 처음으로 열린 공연을 열심히 홍보했어. 그 공연은 LA Guns랑 워런트의 자니 레인이 있던 Plain Jane도 같이 무대에 섰지. 할리우드 전역에 이 공연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 그리고 그날 여러 레코드사의 신인 발굴팀 담당자들이 보러 올 거라는 소문이 돌아서 건즈는 원래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무대에 나서기로 했어. 그때까지 얘네가 40분 이상 공연한 걸 본 적 없었는데, 이땐 거의 2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나뒹굴며 뛰놀았어.

이 Roxy 공연은 밴드의 팬클럽 회지에도 언급된다.
'저번 달에 했던 Roxy 공연은 대박이었어! 280명 정도가 와서 공연장이 미어터졌더라 정말 다들 고마워! 그리고 우린 이 공연을 전부 비디오로 찍었어!'
LA 위클리에는 이 날의 LA Guns와 건즈 앤 로지스를 두고 '글램 보이 인척 하는 애들의 새로운 신'이라고 표했다. 그리고 건즈가 공연 시간을 바꿈으로 톰 주토트는 건즈의 라이브를 놓치게 된다.

톰 주토트 : 내 조수가 나한테 Roxy에서 10시쯤에 공연을 한다고 알려줬어. 그래서 9시 30분에 도착했는데 날 들여보내 주지 않더라고. 분명 초대 리스트에는 있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이미 끝났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10시에 시작이잖아!"라고 말했더니 건즈는 첫 번째로 공연을 해서 이미 내려갔다고 하더군. 그래도 난 백스테이지로 가서 액슬을 찾아다녔어. 그때까지만 해도 액슬을 본 적도 없었지만, 어딘가에 있다는 얘길 들었거든. 결국 구석진 곳에 혼자 앉아 있는 액슬을 찾았지. 모두 그와 가까이 있는 걸 무서워하고 있더라.


액슬은 잠시 있다가 LA Guns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어. 그 공연을 끝내고 내려온 액슬은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말을 붙이기 쉬워 보였지. 다가가서 "너희 공연을 보러 왔는데 8시에 시작하는 줄 몰라서 놓쳐버렸어"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액슬이 공연 시간을 앞당긴 이유를 설명해 줬어. 다음 공연은 언제냐고 물었더니 2주 뒤에 Troubadour에서 공연한다고 알려줬지.

조셉 브룩스 : 톰이 공연을 보러 왔지만, 시간이 안 맞아서 보진 못했어. 그래도 그는 건즈에 관심이 컸는지 백스테이지로 안내해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데려다주고는 서로 소개해줬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기로 결심한 것 같더라.

스티븐 애들러는 게펜과 이어진 데엔 비키 해밀턴의 공이 컸다고 말한다.

스티븐 : 어느 날 밤, 비키가 우리한테 게펜 레코드의 톰과 엔세나트를 소개해줬다. 그들이 하는 행동으로 우린 꽤 높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했는데, 아마 선셋의 Wolfgang Puck's였던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의견 일치되는 건 엄청 드문 일이었는데, 어떻게 한 건지 그들은 우릴 설득시켰다.
 

1986년 1월 18일. LA Guns 폴 블랙과 액슬


초기 매니지먼트

 

라즈 큐

라즈 큐는 LA Guns의 매니저였다가 트레이시의 새 밴드인 건즈앤로지스를 관리했다.

라즈 큐 : 밴드한테 내 공간을 쓰라고 내버려 둔 게 다다. 부족하면 5달러 정도 모아서 리허설을 하게 해 줬다. Naugles의 감자튀김을 나눠주거나, 내 밴, 앰프, 캐비닛, 무선 마이크나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 빌려줬다. 건즈의 무대 매니저인 조가 공연장까지 모든 장비를 옮겼다. 무급으로. 할리우드에 널린 밴드 중 범상치 않은 그룹을 돕는 게 내 기쁨이었다. 돈도 안 들었고, 거기다 난 건즈를 백 번 넘게 봤지만 넌 못 봤잖아.

하지만 큐는 밴드와 그 무리들이 마약을 사려고 본인의 장비를 빼돌리는 것에 실망했고, 액슬을 집에서 내쫓았다.

 

블랙 랜디 

이후에 밴드는 더프의 지인인 블랙 랜디가 맡게 된다. 랜디는 LA 펑크 밴드인 'Black Randy and the Metro Squad'에 있던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랜디는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비키 해밀턴

건즈의 매니저를 그만둔 큐가 포이즌의 매니저인 비키 해밀턴에게 건즈를 맡으라고 제안했지만, 비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해밀턴 전기에 따르면 헬 투어 전부터 밴드를 관리했다고 하지만, 큐와 캔터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해밀턴은 이미 1984년 초에 할리우드 로즈였던 액슬과 이지를 만난 적 있었다.

비키 해밀턴 : 당시 연예 기획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비키... 나는 액슬 로즈고, 할리우드 로즈라는 밴드의 리드 보컬이야. 우린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밴드가 될 거고, 다들 널 추천해 줬어. 우리가 공연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그래서 "나한테 데모를 보내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 액슬은 "응! 내가 지금 거기로 가서 바로 들려주는 건 어때?"라고 말했고, 난 웃었다. 이미 그의 열정에 매료된 것 같았다. "그럼 액슬, 우선 우편으로 데모를 보내주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자 액슬은 "왜?"라고 반문했다. 그의 물음에 당황한 나머지 "여긴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거든"이라고 대답했다. 액슬은 집요하게 "괜찮아, 내가 플레이어를 가지고 갈게"라고 했다. 난 설득하길 포기하고 그에게 에이전시로 오는 길을 알려줬다. 몇 시간 뒤, 액슬과 이지가 로비에 앉아있었다.
 
해밀턴은 할리우드 로즈의 공연을 잡아주었다.
큐와 캔터, 그리고 해밀턴은 해밀턴이 언제부터 건즈를 맡았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1985년 말에 해밀턴이 건즈를 맡고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마크 캔터에 의하면, 해밀턴은 1985년 11월 22일 Troubadour 공연에서 건즈의 매니저라고 밝혔다고 한다.
 
스티븐 : 우리가 선셋 스트립의 메이저가 되고 있단 건 비밀이 아니었고, 비키는 이걸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연 전후로 와서는 우리 질문에 답을 해줬고, 비즈니스에 밝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순간 비키를 좋아했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고, 자랑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지 않았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면서 이미 공연을 잡아두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직접 공연을 잡지 않아도 된 건 그게 처음이었다. 밴드에서는 간단하게 생각했다. 비키가 우릴 돕고, 힘써준다면 밴드의 일부라고. 난 그녀가 인상적이었다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우리를 이렇게 성장시켜준 게 고맙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릴 믿었고, 도와줬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누가 알까.


1986년 2월 28일, 톰이 공연을 보다

 

건즈에 관심을 가진 건 톰만이 아니었다. 다른 기획사들도 있었고, 심지어 더프, 액슬과 만나 계약을 치를 뻔했지만, 녹음 비용 문제로 결렬되었다. 이지는 음악 산업에 관련된 책까지 샀다고 한다. 여러 기회가 찾아왔지만, 밴드는 섣불리 계약을 맺지 않고 더 좋은 조건을 가져올 회사를 기다렸다.

1986년 1월 18일, 앞서 말한 Roxy 공연이 매진되고 나서 메이저 레이블 직원들은 건즈의 공연을 보러 오기 시작했다.
 
슬래쉬 : 우린 음반 계약같은 걸 염두에 두지 않고 밴드를 하고 있었어. 근데 갑자기 음반사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소문이 돈 거지. 우린 큰 관심을 얻었고, 화젯거리가 되었어.

이지 : 여러 레이블에서 우릴 찾아왔고, 그들은 우리 모두를 데리고 나가서 저녁을 사줬지. 잘 먹었어. 우린 먹고 싶은 걸 시키고는 "그래서 본론이 뭐라고?"라고 말했지.

더프 : 우린 톰을 좋아했고, 결국 게펜 레코드랑 계약하게 될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많은 저녁을 얻어먹으려고 다른 회사 직원들을 만나고 다닌 거야.
 
Roxy 공연을 놓친 톰 주토트는 2월 28일 Troubadour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간다. 이날 'Out Ta Get Me'가 처음 무대에 오른다.
 
톰 주토트 : 난 비서에게 "공연 시작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 일찍 도착해서 백스테이지로 가 액슬과 슬래쉬를 만났지.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어. "이 공연이 끝났을 때 난 여기 없을 거야. 내가 일찍 자리를 뜨면 좋은 징조겠지만, 공연 내내 내가 보인다면 아마 나쁜 징조일 거야. 어쨌든 공연이 끝나면 난 없겠지. 전화 걸게" 공연이 시작되고 밴드 사운드가 너무 커서 제대로 듣진 못했어. 하지만 액슬이 무대에 올라갔을 땐 정말 믿을 수 없었지. 그가 짐 모리슨 같은 대스타가 될 거라 생각했어. 액슬은 정말 대단했고, 슬래쉬 역시 내가 본 기타리스트 중 최고였지. 둘은 믹 재거랑 키스 리처즈 같았어.

액슬 : 톰은 Whisky에서 본 AC/DC의 공연만큼 시끄러운 공연은 처음이라고 했어. 우린 그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시끄러운 밴드였지. Troubadour에서 공연했을 때 우린 130㏈까지 갔어. 그건 활주로를 달리는 747기의 소리랑 맞먹는 정도라고!

슬래쉬 : 지난 10년간 우리 같은 밴드가 LA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
 
공연 다음 날 톰은 곧바로 데이비드 게펜을 찾아가 전날 락앤롤의 미래를 봤다고 말하며, 게펜 레코드에서 가장 큰 밴드, 어쩌면 롤링 스톤즈나 레드 제플린 심지어 더 후 같은 큰 밴드가 될 거라고 말했다. 데이비드는 톰을 정신 나간 사람 보듯이 쳐다보며 확신하냐는 물음에 톰은 바로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약과 술

 

슬래쉬 : 이 밴드의 모든 이들은 정도가 어떻든 간에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을 겪었다. 35살까지 살고 싶지 않았다라든가 그런 이유 같은 건 없고, 단지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린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밴드의 다섯 명 모두 밴드 초기에 다양한 것에 손을 댔다. 같이 생활하고 파티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마약은 그들의 삶과 직결되었고, 누군가에겐 점점 더 중요해졌다. 액슬은 당시를 돌아보며 약물 남용이 신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다며 마약이 그 시절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또한 액슬은 1986년 말 슬래쉬와 이지가 이미 마약에 중독되어 있을 때, 밴드 전체가 헤로인을 조금씩 해봤다고 말한다. 게펜 레코드사의 직원에 따르면 이지, 슬래쉬, 액슬은 모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충분히 고통받았다고 한다.

 

이지 스트래들린

1988년 12월 잡지 인터뷰에서 이지는 80년대 초 할리우드 로즈에 있을 때 액슬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고 말한다.
 
이지 : 액슬이랑 내가 17살 때, 우린 같이 인디애나 시골길을 운전해서 LSD를 하고 Queen II 테이프를 들었어.
 
이지는 헤로인 중독자가 된 건즈의 첫 번째 멤버였다. 1984년 즈음 룸메이트로부터 헤로인을 받아서 피우기 시작했다.
더프는 건즈에 들어가기 전 이지를 '항상 마약에 절어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으며, 나중에 이지가 뒷골목에서 헤로인을 팔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시 이지는 여자 친구와 함께 팔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여자 친구인 크래프트는 건즈 멤버들에게 헤로인을 공급하고 있었다.
 
스티븐 : 이지는 헤로인에 빠져있었어. 그의 히어로인 로니 우드나 키스 리처즈처럼.
 
그러다가 이지는 어느 순간 마약으로 체포를 당하고 가까스로 그만두었다고 한다. 액슬은 이지가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다시 고향인 인디애나로 돌아간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액슬 : 많은 사람이 헤로인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고, 끊기 위해서 캘리포니아를 완전히 떠나곤 했다.
 
다시 1986년으로 돌아와서 그해 3월 건즈가 게펜과 계약을 맺을 무렵에도 이지는 마약을 하고 있었다.
 
이지 : 'Appetite For Destruction' 녹음을 하고 있을 때도 약에 완전 손을 떼진 못했어. 낮에는 녹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만 하고, 밤에는 나가서 술을 마시며 코카인을 했지. 그리곤 정오까지 자다가 다시 돌아와서 녹음했어. 그러니까 녹음을 할 땐 엄청 취해있는 상태가 아니었지.

 

더프 맥케이건

더프는 6학년 때 이미 각성제, 코카인, LSD를 경험했고, 마약으로 인한 공황 발작을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그만두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4학년 때엔 마리화나를 피웠고, 7학년 때엔 코카인을 흡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알콜이 더프를 지배하게 된다.
 
더프 : 어렸을 때 아버지가 위스키를 조금 주셨어. 하와이안 위스키였고, 이름이 하와이식으로 굉장히 길었어. 아버지는 내게 술을 꿀꺽 삼키고 그 이름을 말해보라 시키셨고, 난 너무 취해서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했지.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야.

스티븐 : 더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
 
더프의 이런 알콜 중독 때문에 액슬은 그를 '더프 맥주의 왕 맥케이건'이라 불렀다.

 

스티븐 애들러 

스티븐 역시 일찍 마약을 시작했다.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바로는 11살 때 대마초를 시작했다고 한다. 1984년 크랙 코카인과 헤로인을 처음 해봤다고 한다.
 
스티븐 : 크랙을 들이마시고, 곧 엄청난 두근거림과 함께 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걸 피운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욕구가 밀려왔다. 처음 느껴본 절박감에 계속 그걸 피웠다. 그땐 몰랐지만, 그 순간 파멸의 시작을 맛본 것이었다.
 
더프는 한때 스티븐이 자신에게 "내가 인생에서 제일 원하는 건 돈을 벌어서 좋은 대마를 사서 하는 거야"라고 말한 걸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더프 : 난 스티비가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무뎌지게 하려고 어떤 짓이든 한 거라고 생각해. 불쌍한 새끼.

 

슬래쉬

슬래쉬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고, 슬래쉬는 그걸 물려받았다.
 
슬래쉬 : 네가 독립해서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은 너한테 좆같은걸 주려 할 거야, 술이나 마약 같은 거. 나랑 더프는 2년 정도 심한 알콜 중독 상태였어. 오후쯤 일어나서 사운드 체크를 하러 가면 술을 너무 마신 탓에 손이 떨려서 연주할 수 없었어. 그럼 어떻게 했냐고? 더 마셨지! 더 많이 마시면 괜찮아졌거든.
 
슬래쉬는 건즈가 결성되고부터 헤로인을 시작했다. 라즈는 슬래쉬가 86년 3월 게펜과 계약한 지 얼마 안 지나서 헤로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슬래쉬 : 그 무렵부터 헤로인을 하기 시작했어. 흥미를 느꼈고, 그게 종말을 불러왔다고 생각해. 처음엔 그냥 담배 피우듯이 피우고, 그다음엔 코로 들이마시고... 그걸 처음 했을 땐 정말 엉망이었어. 결국 들이마시는 거로는 불만족스러워졌고, 피우는 것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중독됐어. 어쨌든 내 말은 그건 정말 위험한 마약이고, 인생을 망쳐버려. 소량의 가루지만, 정말 그래.

내가 망할 기타 치기를 그만두고, 이지를 제외한 모두와 대화를 안 할 때가 있었어. 왜냐면 이지랑은 같이 마약을 했었거든. 3개월 동안 아파트에서 나오질 않았지. 마트에 갈 땐 빼고. 그렇게 살던 날 막아준 건 더프의 전화였어. "넌 밴드로부터 네 스스로 소외시키고 있어"라는 말이었지. 그들은 정말 내 유일한 친구들이었기에 결국 그만두고 밖으로 나왔어.
 
건즈의 'Mr. Brownstone'은 이지와 슬래쉬가 헤로인에 취해서 작곡한 곡으로, 슬래쉬가 과다복용으로 고생한 뒤 만들어졌다.
 
데시 크래프트 : 하루는 슬래쉬가 멕시코 타르 헤로인을 가지고 왔고, 이지랑 난 조금만 하라고 했어. 슬래쉬는 괜찮다면서 정맥에 바늘을 꽂았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사후 경직이 일어난 것처럼 조용해서 의자에서 끌고 내려와서 바닥에 눕혔어. 내가 인공호흡을 했고, 그가 "나 죽은 거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천사야?"라고 말한 게 기억나네. 걘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리고 바로 'Mr. Brownstone'을 썼어.
 
1986년 8월 한 공연에서 'Mr. Brownstone'을 연주하기 전 액슬은 헤로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8월 23일 Whisky에서도 그는 "넌 그 좆같은 걸 그만둬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당시 슬래쉬와 이지는 둘 다 헤로인 의존증이 심해 밴드에 영향이 갔다. 
 
슬래쉬 : 마약이 날 정말 망가뜨리기 전에 그만뒀어. 그걸 그만두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액슬 로즈

액슬은 다른 멤버들보다 훨씬 늦게 마약과 술에 빠졌다.
 
액슬 : 처음 술을 마신 건 16살 때였어. 다른 세 녀석보다 늦게 시작했단 거 알아. 얘넬 만나기 전엔 마약은 손도 안 댔어. 우린 맥주를 박스째로 사고, 마리화나를 사고, 그리고 난 신경 안정제를 샀지.

라즈 큐 : 액슬은 대마 중독까진 아니었어.
 
액슬의 옛 여자 친구인 지나는 AFD 앨범이 나오기 전에 액슬을 보러 갔는데 액슬이 헤로인에 취해있어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액슬 : 난 3주 동안 그걸 했고, 정말 인생에서 멋진 시간을 보냈어. 그 멋진 아파트에서 좋아하는 여자랑 같이 레드제플린을 들으면서 약을 하면서 뒹굴거렸거든. 정말 좋았어.

스티븐 : 우리 중엔 액슬이 가장 괜찮았어. 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만, 액슬이 마약 때문에 정신이 나간 걸 본 적 없거든.

 

밴드

건즈는 할리우드에서 마약 복용으로 유명해졌으며, 1987년 어떤 인터뷰에서는 'Lines N' Noses'라 불렸다. 또한 게펜 레코드의 대표는 "건즈 앤 로지스? 그래, 걔들은 성공할 거야. 살아있다면 말이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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