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즈 포럼 번역/1986년

1986년 3~4월

1986년 3월 21, 23일

 

3월 21일 Fender's Ballroom에서 쟈니 썬더스의 오프닝 무대를 한다.

 

더프 : 1986년 3월 말 어린 시절 엄청 좋아했던 쟈니 썬더스가 공연을 하러 왔는데 다들 우리 보고 오프닝을 맡아 달라고 했었어. 나한텐 큰 의미였지. 이지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Fender's Ballroom에서 하는 그 공연을 정말 기대했어. 안타깝게도 Fender's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벌어진 일은 우리가 사운드 체크를 하는 동안 쟈니가 액슬 여자 친구인 에린한테 말을 건 거야. 어디서 마약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던 것 같아. 액슬이 쟈니가 에린한테 집적거리고 있단 걸 눈치채고 흥분해서는 엄청 뭐라 하기 시작했어. 액슬이 소리치기 시작하면 좀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쟈니는 드레싱 룸에 몸을 숨겼고, 진정시키려고 애썼어.

 

마크 캔터의 책에서 더프는 상황을 조금 애매하게 설명하며 액슬이 옳았을 게 확실하다고 말한다.

 

더프 : 쟈니 썬더스는 나랑 이지의 우상이었어. 우리 모두가 좋아한 락앤롤의 대부같은 사람이었지. 진짜 히어로였어. 내 기억엔 그날 밤 액슬이랑 쟈니가 다퉜던 것 같은데, 꽤 실망스러운 일이었어. 쟈니는 헤로인 중독이었으니까, 난 액슬이 한 게 옳았다고 봐.

 

이지는 이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이지 : 초창기에 썬더스의 오프닝 무대에 선 적 있었어. 액슬이 속옷도 안입고, 가죽바지에 엉덩이만 내놓고 다니던 그 시절 말이야. 백스테이지에서 쟈니 썬더스가 액슬을 보더니 "너 무슨 호모 폭주족이냐?"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 액슬이 지붕 뚫고 나가는 줄 알았어. 죽여버리겠다는 둥 소리치고 그랬지. 진짜 엉덩이를 차 버리고 싶었어. 그리고 쟈니는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버드와이저를 마셨어. 대단한 첫인상이었지.


뉴욕 돌스 노래를 자주 커버하곤 했었어서, "Human Being"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좀 웃긴 일이었어. 난 쟈니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해. 나중에 같이 술 마시면서 잘 어울렸어.

 

이틀 후인 3월 23일, 뮤직 머신에서 자선공연을 한다. 자선 단체는 'El Rescate'로 난민들과 출입국 사무소에 체포된 사람들에게 법적으로 지원해 주거나 식량과 피난처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이 공연에는 제트 보이, 댐 양키즈 등도 참여했다.

 

3월 21일


1986년 2월~3월, 게펜 레코드로 결정하다

 

톰 주토트 : 평론가들은 이런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수백만 장의 음반을 팔았다.

 

여러 회사들의 연락이 있었지만, 밴드는 결국 톰 주토트와 게펜 레코드와 손을 잡기로 결정한다. 더프에 의하면 그들은 밴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주토트에 신뢰를 했고, 무엇보다도 게펜에 가면 절대적인 예술적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결정했다고 한다.

 

액슬 : 다른 레이블들과도 만나봤어. 그들도 우리한테 뭐 여러 가지를 준다고 했지만, 톰은 달랐지. 그는 건즈를 어떻게 다뤄야 성공할지를 알고 있었고, 락앤롤 밴드로 나아가길 원했어. 다른 레이블들과는 확실히 달랐지. 다른 곳에선 락앤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고, 우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거든.

 

슬래쉬 : 게펜은 다른 음반 회사들보다 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데이비드 게펜은 AC/DC보다 더 시끄러워서 우릴 좋아했지.

 

스티븐 : 톰은 멋진 사람이었어. 우리한테 '이것만 좀 바꿀게'라던가 '이렇게만 해주면 계약할 수 있어'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좋아했다. 다른 레이블들은 우리한테 맞춰주는 것처럼 굴다가도 항상 마지막에 뭔가를 고치고 싶어 했다. 우릴 꼭두가시처럼 조종할 수 있는 밴드로 만들려 했어. 거의 처음부터 게펜과 계약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밥을 못 얻어먹은 몇몇 레이블이 있었다. 그래서 톰한텐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액슬과 7만 5천 달러

3월 말, 밴드와 톰이 만난다.

 

톰 주토트 : 액슬은 아프리카 정글의 야생 동물 같았다. 월요일 공연이 끝나고 나서 나한테 와서는 "금요일까지 7만 5천 달러 수표를 가져오면, 계약할게"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정말 전례 없는 일이었다.


액슬에게 연락이 와서 일정이 잡혔고, 액슬을 제외한 밴드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모두가 자리에 있기 전까지는 그 어떤 진지한 대화도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액슬이 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멤버들과 얘기를 나눴다. 마침내 액슬이 도착했고, 나는 밴드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봤던 밴드 중에 최고라고 말했었다.


1986년 3월, 게펜과 계약하다

 

톰 주토트 : 금요일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고, 서명을 하고 나면 그들에게 수표를 주고 끝나는 거였어. 근데 8시가 됐는데도 액슬은 코빼기도 안보였지. 나머지 멤버들은 이미 와있었는데 말이야. 그들은 액슬을 기다리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

 

비키 말로는 액슬은 그 날 렌즈를 잃어버려서 늦은 거라고 한다.

 

비키 해밀턴 : 6시까지 게펜에 가는 거였는데, 액슬은 자기 렌즈를 못 찾고 있었어. 화가 난 건지 액슬은 렌즈를 찾을 때까지 못 간다고 했었지. 슬래쉬랑 나는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우린 바로 액슬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 액슬이 입었던 바지 주머니에서 렌즈를 발견했지. 렌즈는 찾았지만, 액슬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어. 그때 스티븐이 액슬을 찾았고, 액슬은 Whisky A-Go-Go의 지붕 위에 앉아있었어.

톰 주토트 : 8시 45분쯤이었나? 마침내 액슬이 도착했고, "돈은 가져왔어?" "응" "알겠어", 그리고 서명. 이것으로 계약은 끝났다.


1986년 3월 28일, 두 번의 Roxy 공연

 

게펜과 계약을 하고, 3월 28일 Roxy에서 하루에 두 번의 공연을 한다.

 

더프 : 1986년 3월 28일(게펜과 계약한 후)에 록시에서 축하 공연을 했어. 원래 그 공연은 계약 전부터 하기로 했던 건데, 쇼케이스 같은 게 돼버렸지. 어쨌든 '게펜 레코드의 아티스트 건즈 앤 로지스가 록시에서 공연합니다'같은 문구로 홍보했고, 많은 사람들이 왔어.

 

그 공연에서 액슬은 주토트에게 'My Michelle'을 바쳤고, 해밀턴에게는 'Mama Kin'을 헌정하며 "내 이상한 짓을 참아줘서 고마워. 난 진짜 쓰레기야"라고 말한다.

 

1986년 3월 26일


이미지와 브랜드화

 

이지 : 난 사람들이 우리를 나쁜 놈들이라 여겨도 신경 안 써. 우린 LA에서 나온 유일한 밴드거든, 정말이야. 그리고 애들은 그걸 알고 있지.

 

초기 스타일과 이미지

미셸 영 : 스티븐이랑 슬래쉬랑 같이 LA에서 학교를 다녔고, 걔넬 통해서 액슬을 만났다. 액슬은 항상 "인디애나에서 왔어"같은 느낌이었다. 파란색, 흰색 줄무늬가 있는 돌핀 팬츠에 카우보이 부츠, 거기다 크롭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난 그걸 보고 "그렇게 입고 다니면 같이 멜로즈 안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들은 밴드의 이미지와 브랜드화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이는 1986년 초 건즈에게 이미지가 밴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을 받은 인터뷰에서 알 수 있다. 이지는 '매우 적음'이라 답했지만, 액슬과 슬래쉬는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액슬 : 아니야, 난 이미지가 밴드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싶어.

 

할리우드의 글램 씬에 대한 인터뷰에서 슬래쉬는 그들의 이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슬래쉬 : 75%는 음악, 75%는 이미지야. 음악이 어떻든 간에 애들은 시각적인 거에 끌릴 수밖에 없어.

 

밴드가 성공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가 미치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액슬 : 난 내가 입고 싶은 걸 입어. 머리를 만지고 화장하는 걸 좋아해. 처음 여기 왔을 때 난 무대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하는 게 거짓된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바보였지.

 

초기 글램 시기

밴드는 로스앤젤레스 클럽을 자주 드나드는 글램 밴드와 어울렸고, 곧 그들 역시 스스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고 무대에 섰다. 당시 추세를 따르는 것은 확실히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여성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적이었다.

 

액슬 : 건즈가 커지기 전에 난 일주일 내내 Rainbow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정말 평범한 모습으로 있었어. 그리고 토요일 밤에는 풀 메이크업을 하고 정말 완벽한 상태로 옷도 제대로 입고 갔지. 그랬더니 갑자기 모든 여자애들이 와서 "네가 이런 사람인 지 몰랐어.", "와, 너 정말 다른 사람 같다" 어쩌구저쩌구 이러는 거야.

더프 : (로버트 존의 책에 있는 옛 사진들을 보면서) 음, 이해해줘. 이땐 1985년이었고 난 이것보다 더 멍청해 보일 때도 있었어. 그래, 여기 있네. (책에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슬래쉬의 모자

슬래쉬 : 난 멜로즈에서 그걸 슬쩍 했어. 멜로즈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지금은 없는 한 가게에 들어갔고, 거기서 이 모자를 봤어. 난 모자랑 콘초 벨트를 훔쳤지. 그리고 액슬이랑 같이 앉아서 그 콘초 벨트를 좀 잘라서 모자에 둘렀어. 그날 밤 Whisky에서 공연했는데, 아마 AFD 앨범 속지에 사진이 있을 거야. 윗옷을 입지도 않고, 비씨 리치 기타를 치는 사진이 있을 텐데 그게 바로 그날이야. 정말 약에 취해있었지. (웃음) 그땐 정말, 그렇지. 그게 내가 그 모자를 쓴 첫날이었어. 그냥 멋있어 보였지.

 

세평을 이용하다

밴드는 '나쁜 놈들의 집합'이라는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스티븐 : 내 말은, 우린 그래 미친 짓을 하긴 했지만, 누굴 다치게 하거나 망치는 등의 그런 진짜 못된 짓은 절대 안 했어. 우린 그런 거 안 좋아하거든. 그냥 재미있는 것만 했어. 누굴 다치게만 안 하면 괜찮지... 안 그래? [...] 그래서 우린 물건을 좀 부쉈어. 술도 많이 마셨고. 그게 뭐가 문제야? 난 호텔 창밖으로 많은 걸 던져버렸고, 이건 락의 황금률과 같아! 성공했으면 이런 걸 해야 해. 물건을 부숴야 하고, 감옥에도 가야 하지. 호텔 창밖으로 모든 걸 내던져야 하고. 뭐, 그런 거지. 다시 말하지만 우린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

 

슬래쉬는 락앤롤의 나쁜 놈들이란 타이틀을 얻은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슬래쉬 : 언론이 우리에 대해 어떤 미친 루머를 만들어내든 우린 신경도 안 썼어. 우리가 모두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거랑 우리가 다 마약 중독자라는 거, 그리고 액슬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었다는 기사를 읽었어. 그런 걸 보고 비웃었지. 우린 그런 기사를 보고 애들이 더 밴드에 관심을 갖게 될 거로 생각했거든. 애들은 그걸 읽고 우리 레코드를 사거나 공연에 오고 싶어 할 거라고.

 

액슬 역시 밴드의 평가에 대해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했다.

 

액슬 : 적어도 우린 관심을 받은 거야.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보단 낫지.


4월 5일

 

4월 5일 재개장한 Whisky A Go Go에서 공연을 한다. 포스터에는 '당신이 위스키 고-고에서 진짜 락앤롤 밴드를 본 게 언제입니까?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라는 문구로 홍보했다. 그리고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액슬의 부모가 인디애나에서 엘에이로 넘어온다.


액슬 : 내가 그 자식을 때려버릴까 무서워. 위스키의 헤드라이닝 무대에 오른 날이었는데, 가족일 때문에 조금 심각해졌어. 문득 전기충격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생이랑 같이 가게에 들어갔어. 들어가서 내가 '저 죄송한데, 전기충격기 좀 볼 수 있을까요?'라고 공손하게 말했는데, 주인이 '이봐,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고 하더라. 동생이 옆에서 날 가리키면서 방금 계약을 하고 왔으니 이거 10개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다고 거들어줬는데도 말이야. 결국 그 사람은 팔지 않았어.

 


빈털터리에서 부자로

 

밴드는 게펜에게 받은 선불금인 7만 5천 달러로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전처럼 가난에 허덕이진 않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타투를 새기거나,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더 많은 약과 술을 샀다. 라즈의 말로는 밴드가 '비싼 아파트'도 빌렸다고 한다.

 

액슬 : 은행이 내 기록을 잃어버려서 돈을 내 신발 안에 넣고 다녔어. 그리고 그 돈으로 장비랑 옷을 샀어. 스티븐은 일주일 정도 아침으로 햄버거를 먹었어. 우린 집을 빌려서 파티를 열기도 했고, 택시도 타고 다녔지.

 

더프 : 우린 가장 먼저 새로운 장비를 샀어. 그동안 쓰레기 같은 걸 쓰고 있었거든. 그건 진짜 쓰레기였어. 몇 분 안 걸리는 술집까지 택시도 타고 다녔지. 그전까지는 돈이 한 푼도 없기도 했고, 그때 19살인가 20살이었는데 그 나이 대 애들이 돈 관리에 대해 뭘 알겠어.

 

슬래쉬 : 우린 돈을 받고 안절부절못했어. 왜냐면 게펜이 공연은 나중에 많이 하라고 잠시 금지시켰거든. 그래서 지겨워진 우린 더 많은 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합주를 했어.


1986년 4월

 

계약 후, 주토트는 멤버들을 아파트로 이주시켰다. 그들이 살고 있던 정신 나간 환경에서 벗어나게 한 다음, 더 많은 곡들을 쓰게 해서 데뷔 앨범을 완성시키려는 생각이었다.

 

톰 주토트 : 그들이 머무를 곳을 정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걔들은 우리가 준 돈을 순식간에 써버렸고, 난 그 정신 나간 짓을 그만두게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현금 대신 집세만 내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밴드가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매달 먹을 것과 공간을 지원해 줬다.

 

마크 캔터 : 톰은 건즈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을 했어. 걔네는 움직여야 하는 동물이지, 가만히 안정감을 누리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거든. 톰은 그 밴드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뺏었어. 무대에서 노는 것과 힘겹게 사는 것. 한 집에 몰아넣는다는 그의 전략의 결과물은 참담했지.

 

슬래쉬 : 레코드사는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겠지. 뭐라도 안 하면 계약 해지될 판이었어. 톰이랑은 한 두어 번 만난 것 같은데, 우릴 다 앉혀두고는 "너네 진짜 형편없다. 밖에서 다 듣고 있었어. 정신 좀 차려."라고 말했어. 물론 우리 중 몇은 상태가 좀 안 좋긴 했어.

 

이지 : 우리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왜냐면 음반을 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 여러 문제가 있었어. 회사는 우리가 진짜 앨범을 낼 수 있을지 궁금해했어.

 

새로운 곡을 써내라는 주토트의 압박은 밴드를 힘들게 만들었고, 곧 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톰 주토트 : 내가 녹음을 못하게 하고 작곡하길 부추기니까 결국 날 자르려고 했다

'건즈 포럼 번역 > 1986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6년 10~12월  (3) 2020.07.13
1986년 7~9월  (0) 2020.07.12
1986년 5~6월  (0) 2020.07.11
1986년 1~2월  (1) 202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