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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1986년

1986년 10~12월

1986년 10월, 앨런 니븐

 

1986년 6월, 원래 밴드를 관리하던 스티펠 엔터테인먼드의 아놀드 스티펠과의 관계를 끝내고, 10월 톰 주토트가 앨런 니븐을 데려온다. 97년 인터뷰에 의하면, 니븐과는 이미 86년 여름에 연락을 했었다고 한다.

앨런 니븐 : 톰은 '밴드가 통제가 안돼서 회사 내에서도 말이 많다. 그러니 음반을 만들기 전에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난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하겠다고 했다.

앨런은 EP인 'LIVE!?★@Like a Suicide'가 나오는 것만 도와주기로 했었다.

 

마크 캔터 : 톰은 새로운 프로듀서를 찾는 동안 앨런 니븐을 불러서 밴드를 관리하게 했다. 앨런은 카멜레온처럼 밴드와 어울렸고, 언론의 문제로부터 밴드를 빠져나오게 했다. 일정도 관리하고, 밴드를 향한 레코드 회사의 걱정도 관리했다. 그의 역할은 매니지먼트 쪽에 가까웠지만, 건즈 앤 로지스 앨범 사운드 등에 의견 제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밴드는 그를 신뢰했다.

스티븐 : 게펜은 우릴 위해 앨런 니븐을 개인 매니저로 고용했다. 덩치가 크고, 영국 억양과 걸걸한 입을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그레이트 화이트라는 LA 밴드도 관리하고 있었다. 우린 그를 좋아했다. 그는 우릴 엄격하게 대했고, 바쁘게 굴려서 정상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슬래쉬 : 앨런 니븐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상대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우리한테 큰 소리를 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마약으로 제정신이 아닌 나랑 이지를 상대할 수 있었다. 스티븐이 스티븐 할 때도 다루는 게 가능했고, 더프는 항상 동등한 위치에 있었고, 또 액슬의 특이한 성격, 이 모든 걸 앨런은 아무렇지 않게 다 처리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으며 그의 모든 걸 고려해 봤을 때, 그는 적절한 시기에 온 딱 맞는 인물이었다.

밴드가 앨런을 좋아한 이유 중에는 'Barney’s Beanery에서 술을 마실 때 우리보다 더 많이 마시는 걸 보여줬다'가 있다.
나중에 액슬이 앨런을 해고하자, 앨런은 그 즉시 액슬과 문제가 있었다고 토로한다.

앨런 니븐 : 처음부터 액슬과는 껄끄러운 상황이 종종 생기곤 했다. 그는 내가 본인과 그룹이랑은 다른 행동을 한걸 못 참았다.

앨런과 계약을 하고 했던 첫 번째 공연인 앨리스 쿠퍼 오프닝 때, 액슬이 지각을 해서 그를 빼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이것이 액슬과 앨런 사이를 갈라놓는 씨앗이 되었다.


웨스트 아킨

 

웨스트 아킨은 액슬과 더프의 절친이었으며, 밴드 곡 중 몇 곡(It's So Easy, Bad Obsession 등)을 공동 작곡하기도 했다.

스티븐 : 액슬은 웨스트와 작곡하는 걸 좋아했다.

'Crash Diet'나 'Sentimental Movie'와 같은 웨스트의 곡을 건즈의 데모 테이프에 넣기도 했다.

슬래쉬 : 난 'Sentimental Movie'와 아무 관련 없다. 액슬이랑 웨스트 아킨, 거기에 이지도 있었나? 우리가 헬 하우스에서 지낼 때 녹음했던 곡이다. 내가 솔로를 했는지는 기억 안 나.

1988년 말,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는 질문에 액슬은 '데이비드 랭크, 웨스트 아킨'이라 답한다. (데이비드 랭크는 앞서 나온 액슬의 친구 데이브 랭크)
액슬은 웨스트랑 더프와 'Smith&Wesson'이라는 사이드 밴드를 할 계획도 짰었다.

액슬 : 가끔 웨스(웨스트 아킨)라는 남자랑 곡을 만든다. 앨범 하나를 만들 거다. 컬트나 신데렐라 멤버들이랑 이거에 관해서 얘기한 적도 있다. 이게 그(웨스트)랑 나, 그리고 더프가 하고 있는 거다. 우린 이걸 Smith&Wesson이라고 한다.

액슬은 웨스트랑 많은 시간을 어울리며 보냈고, 1989년 7월 뉴욕 스크랩 바에서 함께 있는 모습이 촬영된 적도 있다. 몇 년 뒤, 웨스트는 건즈의 레이블인 Uzi Suicide와 계약한 첫 번째 아티스트가 된다.

 

1989년 7월. 스크랩바에서 웨스트 아킨과 액슬 로즈

빈털터리에서 부자로... 다시 빈털터리로

 

슬래쉬는 1986년 3월 게펜과 계약할 때 받은 돈을 금방 써버렸고, 다시 지갑이 얇아졌다. 이지도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오늘 밤 나가려면 20달러를 빌려야 해"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또 여자 친구인 데시와 헤어져 지낼 곳이 없었다.

마이크 클링크 : 이지는 스튜디오에서 지내고 싶어 했다. 보험상의 이유로 그러진 못했지만, 낮동안은 머물게 해 줬다. 그래서 이지는 스튜디오에서 살았고, 자기 물건을 가지고 왔었다. 밤에 문을 잠글 때는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도 항상 작은 침대와 자기의 모든 물건이 있는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많은 물건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론 슈나이더(슬래쉬와 Tidus Sloan 같이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슬래쉬 역시 녹음하던 때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스튜디오에서 지냈다고 한다.

당시 레이블은 밴드 멤버들에게 100달러를 주급으로 주었다.

더프 : 내 생각엔 우리가 이렇게 돈 없이 사는 걸 즐겼던 것 같다.

반면 액슬은 자동차를 포함한 37곳을 떠돌며 지냈으며, 여자 친구의 아파트에 정착해 살았다고 한다.


1986년 10월 23일, 액슬이 사라지다

 

1986년 10월 밴드는 산타 바바라에서 열리는 앨리스 쿠퍼 오프닝 무대를 하게 된다. 이 공연은 1987년 3월까지 이어지는 쿠퍼의 'The Nightmare Returns' 투어의 첫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서 액슬은 늦게 도착해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지와 더프가 보컬을 바꿔가며 공연했다.

스티븐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액슬은 늦게 와서 백스테이지 패스를 못 받았고 들어오지 못했어. 액슬이 그러는 동안 우린 무대에 서서 공연을 시작했어. 액슬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냈고, 난 너무 취해서 관객한테 욕을 했어.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겠지. 아마 우리를 서커스나 그런 거로 생각했을 거야.

슬래쉬 : 그 공연을 하려고 우린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액슬은 에린과 함께 가겠다고 우겨댔어. 앨런과 우린 다 반대했지만, 액슬은 앨런한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설득했지. 우리가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액슬은 그 어디에도 없었어. 무대로 나가야 할 시간이 됐는데, 액슬은 없었고 그래서 이지랑 더프, 스티브 그리고 내가 나가서 공연을 시작했어. 이지랑 더프가 AC/DC의 'Whole Lotta Rosie'랑 여러 커버곡을 불렀어. 앨리스 쿠퍼 오프닝 무대였는데, 바에서 취해서 할법한 잼 공연을 한 거야.

스티븐 : 5월(스티븐이 날짜를 잘못 기억하고 있음), 우린 산타 바바라에서 앨리스 쿠퍼와 함께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공연이 있던 날 우린 흰색 밴에 타고 있었는데, 액슬은 그냥 밖에 서있었다. 그에게 '빨리 타, 액슬'이라 말했는데, 액슬은 '아냐, 거기서 만나자. 누가 날 태우고 갈 거야'라고 했다.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됐지만, 누군가 없었다. 올라가기까지 5분 정도 남자 누군가 소리쳤다. '액슬 어딨어?'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늦췄지만, 나가야만 했다. 8시에 무대에 올랐고, 액슬 없이 우린 최선을 다했다. 더프가 'It's So Easy'를 불렀고, 블루스 잼을 했다. 이지와 더프는 몇 마디를 내뱉었고, 더프의 기술자인 마이크 맥밥 메이휴도 노래를 불렀을 거다. 결론적으로 액슬이 없으면, 우린 제대로 된 건즈 앤 로지스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밴드는 화가 나서 드레싱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마크 캔터 : 공연이 끝나자 밴드는 드레싱룸을 부수고, 거울을 몽땅 깨뜨렸다.

더프 : 그 후에 주차장에서 액슬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마크 캔터 : 액슬과 주차장에서 마주쳤다. 액슬은 슬래쉬한테 '얼마나 벌었어?'하고 물어봤고, 슬래쉬는 '500달러 벌었어. 근데 넌 아무것도 안 했잖아'라고 답했다. 액슬은 웃으며 멋지다고 했다.

슬래쉬와 스티븐은 액슬을 해고하고 새로운 보컬을 찾으려 했다고 한다.

슬래쉬 : 우린 바로 할리우드로 돌아왔는데, 너무 화가 나서 그날 밤 액슬을 쫓아내고 새로운 보컬을 찾는 것에 관해 얘기했다.

스티븐 : 모두 화가 났고, 잠시 액슬을 내보내는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단 걸 깨달았다. 앨범은 이미 녹음되어 있었고, 액슬은 밴드로부터 뗄 수 없었기에 진심으로 새로운 보컬을 찾자고 말하진 않았다.

10월 31일, 액슬은 이 사태에 대해 사과한다.

액슬 : 앨리스 쿠퍼 공연에 갔던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면 사과하고 싶어.


1986년 11월, 마이크 클링크와 'Shadow Of Your Love'

 

톰 주토트 : 건즈를 잘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엔지니어 명단을 살펴봤다. 그중에는 빌 프라이스도 있었고, 마이크 클링크도 있었다. 마이크 클링크는 UFO 음반을 맡았었다. 액슬과 슬래쉬와 같이 그 UFO 음반들이 얼마나 멋진가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특히나 라이브 음반인 'Strangers in the Night'에 대해 얘기했다. 마이크 클링크와 연락을 해서 그를 밴드에 소개했다.

마크 캔터 : 액슬이랑 톰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앨범을 말하다가 70년대 영국 그룹인 UFO의 'Strangers in the Night'이 나왔다. 그 라이브 앨범은 건즈 앤 로지스가 애피타이트에 쓰고 싶은 느낌을 딱 담고 있었고, 그들은 그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 겸 엔지니어인 마이크 클링크를 불렀다. 첫 만남에서 마이크는 그들의 에피타이트에서 원하는 방향을 바로 이해했다. 그는 앞선 이들과 같이 데모를 만졌고, 액슬과 톰은 그 결과물을 보고 기뻐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마이크가 건즈를 견디고, 규율할 수 있냐였다.

클링크는 건즈를 좋아했고, 공연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마이크 클링크 : 난 그들을 사랑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S.I.R 스튜디오에 리허설을 하러 갔는데, 그들은 자기들에 대해 말하고 내게 전에 했던 작업물을 물어보고, 또 서로 머리에 침을 뱉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아예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거였다.

슬래쉬 : 마이크를 처음 봤을 때, 우린 그의 에너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와 같이 있는 것도 좋았다.

밴드는 클링크에게 'Shadow Of Your Love'를 맡긴다.

슬래쉬 : 'Shadow Of Your Love'의 사운드가 정말 좋았고, 그때부터 우린 정말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마이크 클링크 : 그들이 내게 원한 건 같이 스튜디오로 가서 한 곡 녹음하고 그 결과를 보는 거였다. 그래서 'Shadow Of Your Love'를 녹음했다. 곡을 믹스해서 가져다줬더니, 새벽 4시쯤 전화가 울렸다. 액슬이었다. 그는 '대단하다. 정말 좋다. 내일부터 같이 합시다'라고 말했다.

더프에 의하면, 클링크는 노래를 들려주면서 '난 당신들 음반 사운드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버전의 'Shadow Of Your Love'는 11월 23일 럼보 레코더(Rumbo Recorders)에서 녹음되었다.

 


1986년 12월 21일, 칩 트릭 오프닝을 서다

 

12월 21일 Fender's Ballroom에서 칩 트릭의 오프닝을 서기 전까지는 아무런 공연도 하지 않았다.

슬래쉬 : 멋지고, 훌륭한 공연이었다. 대단했다. 관객들은 LA Street Scene때와 비슷했지만, 좀 더 정돈된 모습이었다.

액슬 : 아마 우리가 해왔던 공연 중 가장 괜찮았을 거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대단했다.


1986년 12월 12일, 'LIVE!?★@LIKE A SUICIDE'

 

밴드의 첫 EP인 'LIVE!?★@Like a Suicide'가 1986년 12월 12일 발매되었다. EP는 밴드 자체 레이블로 알려진 Uzi Suicide 로고를 달고 나왔지만, 실제론 게펜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밴드는 Uzi Suicide 레이블에 웨스트 아킨을 포함한 다른 아티스트와 계약한다. 그리고 슬래쉬는 '슬래쉬 에어로빅'같은 운동 영상을 공개할 생각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LIVE!?★@Like a Suicide'는 한정판으로 1만 장만 뽑았다. 수록곡은 'Mama Kin', 'Nice Boys', 'Move to the City' 그리고 'Reckless Life'가 있다. 원래 밴드는 한 면에는 커버곡('Jumpin' Jack Flash', 'Heartbreak Hotel'을 포함한) 4곡을, 다른 면에는 오리지널 곡을 싣길 원했다.

스티븐 : 톰은 우리 레이블이지만 실제로는 게펜이 자금을 댄 Uzi Suicide로 EP를 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게펜은 빨리 라이브 앨범을 내서 사람들이 우리한테 열광하길 원했다. 정규 앨범 녹음 준비도 하면서. 라이브 앨범 백그라운드에 수천 명의 함성을 넣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우린 이 앨범이 저렴한 느낌의 소리가 안 났으면 했다. 게펜 엔지니어는 우리에게 진짜 라이브 녹음을 하면 많은 비용이 들 거라고 말했고,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효과를 만들어 넣을 거라고 들었다.

'LIVE!?★@Like a Suicide'는 스펜서 프로퍼의 파샤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으며, 이삼일밖에 안 걸렸다고 한다.

스티븐 : 다 같이 방음부스에 있었고, 각자 따로 녹음하지 않고 동시에 연주해서 '라이브'느낌을 주었다. 딱 하나 추가한 건 백킹 보컬이었다. 'Nice Boys'를 잘 들어보면 액슬이 본인 보컬에 맞춰서 백킹 하는 게 들린다. 녹음을 끝내고, 스펜서는 환호 소리를 더했다. 디오랑 콰이어트 라이엇의 라이브 음원에서 그 소리를 사용했다.

왜 EP를 발매했는가에 대해서 밴드는 돈이 없던 시절 자신들을 좋아해 준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고 답한다.

'Move to the City'는 LA뿐만 아니라 해외 라디오에도 송출되었고, EP는 아무런 홍보 없이 4주 만에 1만 장이 매진된다.

 

LIVE!?★@Like a Suicide를 들고있는 액슬
LIVE!?★@Like a Suicide 커버로 쓰인 더프와 액슬 사진


1986년 말

 

1986년 말, 주토트는 밴드가 앨범 녹음을 할 만큼 좋은 곡들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톰 주토트 : 'Sweet Child O' Mine'을 듣고 나서야 그들이 드디어 준비됐다고 믿었다. 물론 그 전에도 좋았지만, 이때는 'Welcome to the Jungle', 'Sweet Child O' Mine' 등등 'Appetite For Destruction'을 위한 곡들이 있었다.

액슬은 게펜과 계약할 무렵 이미 27곡이나 갖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액슬은 첫 앨범부터 더블 앨범으로 내길 원했다.

액슬 : 에피타이트의 대부분은 클럽에서 연주하던 2년 간 쓴 것들이다. 우린 27곡 정도 되는 곡들을 음반에 넣고 싶었다. 첫 앨범부터 더블 앨범을 원했지만, 그건 좋은 마케팅이 아니었다.

마이크 클링크 : 20개가 넘는 곡들이 있었다. 앨범에 넣을 후보들을 적었는데, 가장 의견이 갈린 곡은 'November Rain'이었다. 대단한 곡이었지만, 다들 데뷔 앨범에는 맞지 않다고 느꼈다. 그들은 앨범이 기타 중심이길 원했다.


1986년 12월 23일

 

첫 EP, 'LIVE!?★@Like a Suicide'를 발매하고 얼마 안 가 Cathouse에서 파티를 열었다. 건즈 앤 로지스, 제트 보이 그리고 LA Guns의 어쿠스틱 공연이었다.

밴드의 회지에 쓰인 초대장 내용은 아래와 같다.
'너... 그래 너. 우리를 지지해준 당신들은 'LIVE!?★@Like a Suicide' 발매 파티에 초대됐다. 장소 : Tame and Ricky’s Cathouse 333 La Cienega Blvd. (Osko’s) L.A., Ca. Phone # (213) 652-9333
공짜야! 그래 무료야. 오후 11시까지 오면 되고, 파티는 9시에 시작이야. 11시까지 음료 1달러고, 새벽 3시까지 열려.'

 

1986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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