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제임스
밴드는 유명해지면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 등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사귀었다. 델 제임스는 그런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델 제임스 : 85년쯤에 처음 만난 것 같아.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임대'라고 적인 건물로 갔는데 웨스트 아킨이 살던 아파트였어. 액슬은 거기서 자고 있었고, 더프는 옆집에 살고 있었어. 집 앞을 지나갈 때 웨스트가 나와서 나한테 술 마실 거냐 물었고, 가서 마셨어. 주말 내내 거기서 보냈고, 그들은 내 캘리포니아에서 첫 번째이자 유일한 친구가 됐어.
1987년 5월, 헬 하우스
1987년 5월, 밴드는 산타모니카 대로에 있는 '다른 집들과 떨어져 있는 작고 칠이 벗겨진 하얀 나무집'에 머문다. 이 집은 또 '웨스트 할리우드 교외의 더러운 집'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후에 '헬 하우스'라 불리게 된다.
1987년 5월, 뉴욕에서 앨범 믹싱
에피타이트의 모든 녹음이 끝나고, 액슬과 슬래쉬 그리고 이지는 뉴욕으로 가서 믹싱을 했다.
슬래쉬 : 마이크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끝내고, 액슬과 이지랑 뉴욕에 있는 스티브 톰슨, 마이크 바비에로와 음반 믹싱을 하러 떠났어.
스티브 톰슨 : 톰 주토트가 나한테 건즈 데모를 보냈고, 들어보니 정말 마음에 들었다. 듣고 나서 "미친, 이거 진짜네"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믹싱 결과물이 데모랑 크게 차이 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데모는 에피타이트의 본질이었다. 톰이 우리한테 프로듀서를 맡아달라 했는데, 그때 하고 있던 게 너무 많아서 일을 더 벌릴 수 없었다. 진짜 끔찍했지. 프로듀싱은 못하겠다 했고, 대신 믹싱을 할 수 있었다. 에피타이트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이게 진짜 락이란 걸 느꼈다. 건즈는 완벽한 밴드였고, 완벽한 자세, 그리고 완벽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이 음반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 일에서 손을 떼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 정도였다.
액슬, 슬래쉬 그리고 이지가 왔다. 매일매일 그들은 곡에 대해 설명했고, 그걸 듣고 작업을 했다. 그들에게 들려줄 준비가 되면 불러서 들려줬다. Paradise City를 믹싱 했을 때, "take me home" 전 부분을 만졌고, 그 부분을 복제했다. 액슬이 그걸 듣고 좋아했고, 그대로 하라고 했다. 톰 주토트와는 거의 붙어서 작업했다. 그는 매일 왔고, 난 그의 대단한 귀와 무언갈 보는 관점이 좋았다. 이지는 콘솔로 와서 확인했고, 슬래쉬는 그 주변에 있었다. Rocket Queen 작업할 때가 생각나는데, 액슬은 뭔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성적인 소리를 넣고 싶어"라고 했다. 포르노에서 녹음해 넣을 수 있었지만, 액슬은 "아니. 진짜를 원해"라고 했다.
마이크 바비에로 : 톰 주토트가 스티브랑 나한테 첫 번째 건즈 앤 로지스 음반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의 프로듀서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내 기억에 그는 우리가 전에 했던 작업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에 에피타이트 프로듀싱까지 맡을 순 없었다. 그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할만할 결정이었다. 다행히 주토트가 우리가 한 테슬라의 앨범을 듣고 와서 앨범 믹스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톰 주토트는 앨범 사운드가 어땠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말했다. 마이크 클링크가 작업한 러프 믹스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가져와서 들려줬다. 그는 이런 사운드가 좋긴 하지만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고 했고, 우린 그렇게 만들어냈다.
슬래쉬 : Rocket Queen 믹싱할 때 액슬은 브릿지에 뭔갈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날 스튜디오에 같이 있던 아드리아나 스미스한테 부스에서 섹스하고 그 목소리를 넣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어. 하루 종일 잭을 마신 상태였어서,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소리처럼 들렸지. 나는 아드리아나가 어떤 소리를 낼지 잘 알았기에 찬성했어. 분위기를 내려고 촛불 몇 개를 켰고, 액슬이랑 아드리아나는 부스로 들어가서 드럼 받침대 옆에 누웠어. 우린 스미스의 진짜 신음소리를 녹음했어.
원래는 뉴욕에 액슬의 여자 친구인 에린도 같이 갈 예정이었으나, 이를 에린이 거절했다. 그래서 슬래쉬가 아드리아나를 데려와서 액슬, 슬래쉬, 이지와 함께 뉴욕으로 간 거다.
스티브 톰슨 : 그녀한테 마이크를 달아줘야 했고, 액슬은 자기 할 일을 했다.
아드리아나는 스티븐의 여자 친구였는데, 그들은 헤어졌다 사귀었다를 반복하는 사이였다.
스티븐 : "멋있다, 이거 누구야?"라고 물어봤는데, 슬래쉬가 "아드리아나야"라고 했다. 아드리아나가 정확히 내 여자 친구는 아니었지만... 우린 꽤 길고 좋은 날들을 보냈었다. 액슬은 Rocket Queen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어떤 여자랑 섹스할 생각을 해냈고, 아드리아나를 불렀다. 칸막이를 세우고, 담요를 깔고 녹음했지. 그는 우리 둘이 가까운 사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됐고, 잘 나왔다.
아드리아나 스미스 : 다 끝나고 액슬이 자기 호텔 방으로 날 데려가서 피아노로 노벰버 레인을 쳐줬어. 그걸 15살 때 쓴 거라고 말해줬지.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곡이었어. 정말 굉장했어.
액슬이 3월 16일 공연에서 에린을 전 여자 친구라 칭했기 때문에, 이 녹음이 가능했을 것이다.
1987년 5월 10일, Drunk Fux
액슬, 슬래쉬, 이지가 데뷔 앨범 믹싱을 위해 뉴욕에 간 사이, 더프와 스티븐은 친구들을 모아 Drunk Fux라는 밴드를 만든다. 이 밴드는 향후 몇 년간 여러 공연을 했으며, 라인업 역시 매우 다양했다.
5월 10일, Drunk Fux는 Coconut Teaszer에서 공연을 한다. 보컬에 델 제임스, 웨스트 아킨과 더프가 기타, 제트 보이의 토드 크루가 베이스를 쳤고, 스티븐이 드럼을 맡았다.
더프 : 토드가 우리랑 놀아서 제트 보이에서 쫓겨났다. 이상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친구였다.
델 제임스 : Drunk Fux에 들어오려면 술 취한 놈(drunk fuck)이어야 해!
슬래쉬 : F U X야.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말하냐면 (웃음). 더 이상 뭘 하진 않는 밴드야. 그냥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 거였고. 웨스트 아킨이랑 더프 그리고 이제 세상에 없는 토드가 있었어. 토드가 떠나서 Drunk Fux는 없는 거야. 메인 멤버 중 한 명이었어. 그리고 우리랑 정말 친한 델 제임스도 있었고, 나도 있었지.
*델 제임스와 슬래쉬 말은 Drunk Fux의 Fux 발음이 Fucks랑 비슷해서 하는 언어유희. 술 취한 놈들이라는 의미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Out Ta Get Me!
슬래쉬 : LAPD(LA 경찰)은 진짜 개 같아.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경찰들은 정말 정말 정말 안심되고 멋져. LA, 특히 우리가 있는 곳의 경찰은 존나 나치 같은데 말이야. 아니면 게슈타포. 진심이야. 언젠가 길을 걷다가 잡힌 적도 있어. 집에서 100야드(약 90m)도 안 떨어진 곳이었어. 위스키 클럽 주변을 걷고 있었는데, 경찰이 저 끝에서 달려왔어. 나한테 있던 단 하나 문제점은 내가 망할 셔츠를 안 입고 있었단 거야. 그래서 차 위로 던져졌어.
더프 : 나랑 스티븐, 그리고 토드 크루가 무단횡단을 했어. 너(슬래쉬)도 있었나? 또 몇 명 더 있었지. 빨간불이었는데 그냥 걸었어. 경찰 바로 앞에서 그런 건 아니야. 웨스트 할리우드에선 그런 짓은 하면 안 돼. 어디서나 그러지 마. 길을 건넜는데, 그들이... 다가왔어. 벽에 밀쳐져서 손은 등 뒤로 돌려졌는데 엄청 아팠어.
컬트와 첫 합동 공연으로 캐나다에 갔을 때, 액슬은 전기충격기를 반입하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슬래쉬는 로스앤젤레스군(카운티) 교도소에서 이틀에서 사흘 정도 수감된 적도 있다.
슬래쉬 : 밤에 대니랑 마약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날이었어. 경찰한테 관리당하고 있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쓸 만큼은 아니었어. 라 시에네가를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이 켜졌어. 우린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대니가 자기 셔츠 주머니에 바늘을 넣어뒀단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지. 그것 때문에 경찰은 우리한테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 됐어. 대니의 차를 압수하고, 소지품 문제로 체포했어. 나한테도 수갑을 채웠는데, 무슨 혐의인지는 말도 안 해줬어.
긴 시간이 지나고 대니를 보내줬어. 걔는 주삿바늘을 소지한 죄로 법정까지 가게 됐고, 나는 혼자 남았지. 난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곧 있으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싶어서 물어봤지만, 답은 못 얻었지. 내가 받은 유일한 답은 작은 방에서 많은 수감자가 있는 큰 곳으로 옮겨진다는 거였어. 잠시 뒤 스쿨버스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해놓고, 창문에는 창살이 있는 끔찍한 차에 탔어. 발목과 손목이 구속된 상태였어. 내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운티 교도소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바로 내 검은 매니큐어를 씹었어. 매니큐어 바른 채로 갈 수는 없으니까. 도착해서 큰 방에 갇혔는데 역겨워서 토할 것 같았고, 진이 다 빠졌었어. 그러다 갑자기 설명도 없이 날 내보냈고, 미친 출입 절차를 다시 겪어야 했어. 옷이랑 소지품을 돌려받았을 때, 왜 여기 온 건지 알게 됐어. 무단횡단 죄로 6년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됐던 거야. 내가 해온 모든 일 중에서 무단횡단 죄로 체포됐다니. 사회에 진 빚을 이런 식으로 돌려받은 셈이지. 나중에 가서야 그때 보석금을 낸 사람이 액슬이란 걸 알게 됐는데 정말 감동이었어.
마크 캔터의 말로는 이 슬래쉬 체포 사건은 파샤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던 1986년 중반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그는 이 일을 언급하며 카운티 교도소에 슬래쉬를 빼내려고 갔을 때, 경찰관들이 액슬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마크 캔터 : 슬래쉬는 미등이 고장 나서 경찰이 멈춰 세운 차에 타있던 거였다. 밴드 로디인 대니 비랄이 운전하고 있었다. 차에서 주사 바늘이 발견됐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슬래쉬까지 체포됐다. 밴드가 경찰관과 맞닥뜨린 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고, 물론 마지막도 아니었다. 액슬이랑 같이 슬래쉬를 구하러 웨스트 할리우드 경찰서까지 갔다. 도착했을 때 슬래쉬는 이미 LA 카운티 교도소로 넘어가고 있었다. 슬래쉬 보석금인 178달러를 내러 가자, 경찰관 중 한 명이 액슬 목걸이에 있는 작은 총 모양을 봤다. 목걸이에 협박이 내포되어 있다며 경찰은 액슬을 벽으로 밀치고 몸수색을 했다. 별다른 위협적인 물건이 안 나오자 그는 액슬을 풀어주었고, 우린 차로 돌아가 슬래쉬가 나오길 5시간이나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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