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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1987년

Welcome to the Jungle과 투어

'Welcome to the Junlge'의 발매와 실패

 
앨리스 쿠퍼 : 'Welcome to the Jungle'을 처음 듣고 부러워했다. 내가 노래를 듣고 시기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인데, 그 곡에 질투심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왜 난 이런 걸 못 했지?"라고.
 
Appetite For Destruction의 두 번째 싱글인 Welcome to the Jungle이 영국에서는 1987년 9월 28일, 미국에서는 10월 3일 발매되었다. 영국에서 더 빨리 발매된 이유는 9월 말에 밴드가 유럽 투어를 할 가능성이 있었고, 라디오에 더 많이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뮤직 비디오 속 폭력적인 장면을 많이 삭제했음에도 논란이 되었고, MTV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AFD 녹음에 참여한 스티븐 톰슨은 이 싱글에 큰 기대를 가졌었다.

스티븐 톰슨 : 난 정글이 잘 안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 Sweet Child O' Mine은 예상도 못한 거였다. 물론 좋은 노래지만, 건즈를 잘 나가게 할 노래라고는 예상 못했다. 어떤 곡이 히트할지 예상을 잘하는 편인데, 나는 그게 Welcome to the Jungle라고 생각했다.
 
1988년 7월, 게펜 회장인 에디 로젠블랫은 Welcome to the Jungle 싱글의 낮은 초기 판매량을 두고 '실패작'이라고 부른다.
 


1987년 9월 29일~10월 8일, Faster Pussycat과 유럽 투어

 
컬트와의 투어가 끝나고 밴드는 에어로스미스의 유럽투어의 오프닝을 맡을 계획이었지만, 금전적인 문제나 에어로스미스의 신보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이하지 못했다. 그 대신 밴드는 Faster Pussycat을 자신들의 오프닝 밴드로 세우고 스스로 헤드라이너가 되기로 결정한다. 1987년 9월 29일부터 10월 8일까지 독일, 네덜란드, 영국에서 공연을 했다.
투어 시작부터 액슬의 목소리 상태가 좋지 않았고, 밴드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슬래쉬 : 액슬의 목소리가 계속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고 있어.

첫 공연은 9월 29일 함부르크 마르크트 할레에서 열렸다.

슬래쉬 : 다음날 밤 우리는 첫 헤드라이닝 투어의 첫 공연을 했다. 공연 장소는 물 위에 있는 정말 공장스럽고 어두운 방이었는데, 한쪽에 벤치랑 긴 테이블이 있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은 검게 칠해져 있었는데, 그동안 봤던 것 중에 가장 어두운 클럽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맥주의 악취가 났다. 관객들은 우리가 살면서 본 관객 중 가장 활기 없는 관객들이었다. 내 기억에 그들은 거기 날씨처럼 차갑고 우울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올라가기 전후로 클럽에는 메탈리카만 나왔다, 쉬지 않고. 미국의 어떤 밴드라도, 아니 그 어떤 밴드라도 메탈리카 같지 않으면 잘되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맞았다. 공연이 끝나고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내일도 이 짓을 또 해야 한다는 게 존나 싫다는 거였다.

함부르크 공연이 끝나고 밴드는 9월 30일에는 독일의 뒤셀도르프, 10월 2일에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공연을 했다.

슬래쉬 : 그 투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연을 골라야 한다면, 암스테르담의 Paradiso에서 했던 걸 고르겠다. 교회로 쓰였던 어둡고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물이었는데 엄청났다. 메인 홀에는 높은 천장과 아치 그리고 멋진 음향장비가 있었다. 액슬이 그날 공연하는 동안 늙은 락스타들을 향해 화를 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영국에서 5번의 공연을 한다. 액슬은 1987년 6월 초에 Marquee에서 공연했던 것을 생각하며 갔다.

액슬 : 정말 기대하고 있어. 올해 초 런던에서 정말 좋았었거든. 그래서 이 투어가 잘 될 거라고 장담해.

영국 공연은 10월 4일 뉴캐슬, 5일 노팅엄, 6일 맨체스터, 7일 브리스톨, 8일 런던에서 진행되었다. 10월 5일 노팅엄 록 시티에서 열린 공연에서 액슬은 혼자 목욕 가운만 입고 와서 출입 거절을 당해서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다시 가져와야 했다. 10월 7일 브리스톨 콜스턴 홀 공연은 잘 흘러갔다.

액슬 : 어젯밤 브리스톨은 환상적이었어. 브리스톨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못하는 밴드는 없을 거야. 해머스미스에서 공연할 때 브리스톨처럼 좋은 관객들이 있는지 찾아달라고 할 거야.

런던 해머스미스 공연 전, 스티븐은 드럼 솔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티븐 : 오늘 밤에 내 첫 솔로를 선보일 거야! 아니지, 사실 두 번째야. 산타 바바라에서 앨리스 쿠퍼 오프닝 공연 때 했었거든. 액슬이 길을 잃은 건지, 백스테이지에 못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우리가 무대에 올랐을 때 액슬은 없었어. 그래서 액슬을 빼고 우리끼리 연주했어야 했는데 정말 지옥이었지. 슬래쉬, 이지 그리고 더프가 노래를 했고, 그러다가 나한테 "드럼 솔로!"라고 말하더라고. "안돼, 안돼!"라고 했지만 걔들이 다 무대에서 내려갔고, 나 혼자 바보처럼 남겨졌기 때문에 뭐든 했어야 했어. 그게 얼마나 큰 참사였는지는 말 안 해도 되겠지! 적어도 오늘 밤에는 해낼 거야.

이날 공연을 두고 스티븐은 이렇게 평했다.

스티븐 : 1987년 10월 8일 해머스미스 오데온에서 영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 'It's So Easy'로 시작해서 'Sweet Child O' Mine', 'Whole Lotta Rosie'로 마무리를 했다. 그곳에서 공연한 것은 그 투어 기간 동안 쌓아온 우리의 인기를 확고하게 했다. 오데온의 좌석은 3500개였고, 스탠딩은 5000개였다. 크림에서 반 헤일런까지 많은 전설들이 그곳에서 공연 금지를 당했는데, 거기서 관객들을 내려다보니 신기했다. 거의 만석이었다.

그렇지만 슬래쉬는 영국에서 한 5개의 공연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다.

슬래쉬 : 다음 앨범이 나오면, 투어의 첫 번째로 영국에 가는 것에 우리 모두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어. 우리가 한 모든 영국 공연이 다 짧았던 것 같아. 우리한테 충분한 시간을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 영국에서 패스터 푸시캣이랑 같이 투어를 했는데, 몇몇 공연은 좋았지만 투어 자체는 좀 별로였어.


1987년 10월 16~11월 1일, EZO와 미국 투어

 
미국에 돌아오고, EZO와 함께 동부 해안 투어를 하게 된다. 첫번째 공연은 10월 16일 선댄스에서 열렸고, 이어 17일에 에어포트 뮤직 홀에서 진행되었다. 세 번째 공연은 볼티모어의 해머잭스에서 열렸는데, 이지가 너무 취해버려서 밴드는 그의 앰프 소리를 낮췄다고 한다.

액슬 : 보통 이지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지만, 해머잭스에서는 완전 나갔었어. 그쪽에서 웨스트 할리우드 보안관처럼 보이는 보안요원 30명을 데리고 있었어. 이지는 우리 크루한테 뭐라고 하는 그들과 말다툼을 했지. 이지는 취했었고, 그 클럽을 정말 싫어했어. 그리고 우리가 무대에 나가기 전까지 귀찮은 일들이 많이 있었지. 이지는 그 모든 게 짜증 나서 클럽 매니저 사무실로 들어가 책상에 오줌을 쌌어. 매니저가 거기 앉아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무대에 나갔는데, 이지는 너무 취해서 우린 걔 기타 소리를 낮춰야 했어. 그리고 이걸 알아차리자 기타를 관중한테 던졌어.
 
슬래쉬는 10월 뉴욕을 지날 때 투어버스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더프 : 슬래쉬가 내쪽으로 떨어졌고, 난 의자에서 5피트쯤 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뇌진탕이 왔고, 기절해버렸다. 다들 내가 죽은 줄 알았지.

10월 20일 필라델피아 공연이 끝나고, 프레드 커리가 스티븐에게 그의 미래 아내가 될 셰릴을 소개해준다. 그리고 10월 22일 랜돌프 공연을 했고, 그 다음날인 23일 리츠에서 공연을 하는데 이날 술에 취한 데이브 머스테인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가 쫓겨났다. 건즈는 데이브를 알아보지 못하고, 관객 중 한 명이 무대에 난입한 줄 알았다고 한다.

리츠 공연에서 액슬은 토드 크루에 대해 말한다.

액슬 : 우리에 대해 알고 있다면, 최근 몇 달 전에 우리가 친구 한 명을 떠나보냈다는 것도 알 거야. 저번 달 즈음 약물 때문에 시다스-시나이 병원에 입원했었어. 이틀간 혼수상태에 빠졌었고, 퇴원하고 처음 본 사람은 토드 크루라는 사람이었어. 제트 보이라는 밴드에 있었는데 우리랑 놀고 다녔다는 이유로 밴드에서 쫓겨났지. 토드가 평생 알고 지내왔던 사람들보다 우리랑 더 친구였던 것 같아. 아무튼 병원을 나오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어. 왜냐면 나한테 아직 친구란 게 남아있는 줄 몰랐거든. 근데 토드가 다가와 안아주면서 "가족한테 이런 짓하지 마(You can’t do this to the family, man)"라고 하더라고. 그 일이 있고 나서 2주 뒤, 토드는 여기 뉴욕에서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어. 이 곡을 토드에게 헌정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매번 망할 죄책감을 느껴서 결국은 이렇게 돼. 친구 하나가 나한테 쉽게 극복하지 못할 거라 했어. 그러니까 극복할 그때까지 이 곡은 토드를 위한 거야. "Knockin' On Heaven's Door"

그리고 액슬은 밴드를 특정 장르라고 정의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액슬 : 많은 사람들과 잡지에서 우릴 보고 "글램 밴드다", "메탈 밴드다", "글램 메탈 밴드다", "하드락 밴드다", "쓰래쉬 밴드다" "무슨무슨 밴드다..." 꺼져! 내 머리카락이 부풀었는지, 차분한지, 아니면 내가 존나 대머리이건 간에 나한텐 다 락앤롤이야.

밴드는 10월 30일 또 하나의 전설인 CBGB에서 공연을 한다. 이 공연은 어쿠스틱 공연이었으며, 곧 나올 EP인 GNR Lies의 곡들도 몇 개 선보였다.

스티븐 : 맨해튼의 유명 클럽인 CBGB에서 공연을 했다. 더프는 자기 히어로인 이기 팝, 라몬즈가 거기서 공연했어서 특히 신났었다. 블론디나 토킹 헤드 같은 내 최애 밴드들도 거기서 시작했다. 도착하고 난 "여기가 진짜 CBGB라고?"라고 했다. 정말 작은 방이었고, 엄청 엄청 가까웠다. 50~70명밖에 못 들어왔다. 거기서 많은 유명 밴드들이 공연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린 어쿠스틱 공연을 했고, 난 탬버린을 흔들었다. 공개하지 않은 곡도 몇 개 선보였다. Used to Love Her의 "그녀를 사랑했었는데, 죽여야 했어"라는 가사는 큰 웃음을 주었다. Patience도 좋은 반응이었다. Mr. Brownstone이랑 Move to the City도 연주했다. 누가 "드럼 솔로!"라고 소리쳐서 탬버린을 엄청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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