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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1987년

1987년 11월, 머틀리 크루와의 투어

밴드의 비즈니스

 

액슬 : 우린 살아남는 법을 배웠어. 음악 사업에서 누가 누구인지를 배웠지. 누가 개소리를 할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터득했어. 교훈을 얻었고, 합의금도 냈었어. 적어도 우린 지금 바로 사업에 대해 말할 정도로 똑똑해. 밴드 중 누군가가 벽에 맞닥뜨렸다 해도 우리한텐 변호사나 회계사가 있어. 어떤 일이 생겨도 벗어날 수 있다는 거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애들한테 비즈니스 수업을 들으라고 말해. 다른 무슨 일을 하든 신경 안 쓰는데, 예술이나 뭔가를 할 거면 비즈니스 수업을 들으라는 거야. "음, 저는 상업적으로는 안되고 싶은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근데 돈을 벌려고 뭔가를 한다면, 상업적인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어도, 상업적인 햄버거 요리사인 거지.

이지랑 나는 항상 앨리스 쿠퍼에 대한 글을 많이 읽었어. 그를 존경해서인 것도 있지만, 이 바닥에서 똑똑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생각해봤는데 바로 그의 매니저(쉡 고든)이었거든. 그래서 우린 쉡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걸 읽었고, 그를 롱 비치에서 만나 우리가 얼마나 그에 대해 읽었는지 말해줬어. 그랬더니 쉡이 "그래? 대단하네. 나도 처음 시작할 때 항상 엘비스 책을 가지고 다녔거든"이라고 말했어. 엘비스가 음반을 낼 때, 계약서에 홍보용으로 모든 RCA 문구류에 반드시 자신의 새 앨범 제목을 넣어야 한다는 항목을 넣었대. 그래서 쉡 역시 음반 회사에 건의했는데 거절당하자 엘비스 책을 꺼내서 "여기 42쪽에 적혀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더라고.

밴드의 친구인 로버트 존 역시 이렇게 말했다.

로버트 존 : 비즈니스에 대해서 이들은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1988년과 1989년, 밴드가 빠르게 성장하던 때 슬래쉬가 주로 비즈니스에 연관되어있던 멤버였을 것이다.

슬래쉬 : 평범한 하루? 어느 날은 아침 8시 30분이나 9시에 일어나서 게펜으로 간 다음에 라디오 방송이랑 전화 통화를 하는 거지. [...] 전날 밤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달려있어. 새벽 5시 30분에 일본 언론과 전화 인터뷰를 했어. 이런 것 때문에 일어나는 건 아니고, 그냥 깨어있는 거야... 집세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작은 대가지.


난 매니저가 담당하고 있는 것 외의 밴드 비즈니스와 밴드를 위한 일을 처리하고 있어. 그렇지만 난 밴드의 멤버 중 하나일 뿐이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액슬도 그래. [...] 항상 홍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지. 티켓 판매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말이야. 모든 인터뷰가 잘 끝났는지도 신경 쓰고 있어. 왜냐면 액슬이 인터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내가 나가려 하고 있거든. 영상이 나오면 가장 먼저 본 다음, 뭐가 좋고 안 좋은지 내 의견을 말해. 내 말은 밴드 모두가 관심 있어하고, 몰두하고 있다는 거야.

슬래쉬는 자신이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슬래쉬 : 이걸 안 하고 있으면, 그냥 앉아서 약을 하고 취해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액슬을 뜻하는 거냐는 질문에) 액슬도 정말 열심히야. 진짜 열중하고 있다가도, 다음번에는 하고 싶지 않아 하지. 액슬은 무척 감정적이라서 내가 하는 거야. 그렇지만 액슬이 원한다면 걔는 Trouser Press지랑 세 시간 동안 얘기할 수도 있어. 액슬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이런저런건 안 해.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걔 마음인 거지.

액슬 : 어디서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 전에, 우리한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야 해.

길비 : 내가 놀란 건 밴드의 진실성이었어. 그들이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밴드를 운영하는지 보면 '이렇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하자' 이런 식은 절대 아니었어. 슬래쉬가 앉아서 티셔츠 등의 디자인을 살피는 걸 봤었는데, '나도 안 입을 걸 왜팬이 입게 놔둬?'라는 느낌이었어. 정말 인상적이었지. 왜냐면 난 여태껏 음악계에서 성공하긴 어려우니까 옳지 않은 걸 했어야 했거든. 이 밴드는 하고 싶은 모든 걸 했고, 그게 통했어.

1994년 초, 한 인터뷰에서 슬래쉬는 밴드의 비즈니스를 즐겼다고 말한다.


1987년 11월 3~21일, 머틀리 크루와의 투어

 

밴드는 10월 31일과 11월 1일 공연을 하고 바로 머틀리 크루의 Girls, Girls, Girls 투어 오프닝을 맡게 된다. 원래는 건즈가 투어 시작부터 오프닝을 하기로 했었지만, AFD가 발매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화이트스네이크가 하고 있었다.

액슬 : 원래 투어 시작부터 하려고 했었는데 준비가 안되어있었어. 앨범이 아직 안 나왔었거든. 그래서 머틀리 크루는 화이트스네이크랑 같이 다녔지. 근데 이제 화이트스네이크가 헤드라이닝을 할 정도가 되었고, 그들도 우릴 좋아하고 우리도 그들을 좋아하니까, 할 때가 된 거지.

11월 화이트스네이크가 자신들만의 투어를 하기 위해 머틀리 크루 투어에서 하차했고, 건즈 앤 로지스가 들어왔다. 이 두 밴드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특히 니키 식스와 건즈 멤버들은 함께 파티를 한 적도 있었다.

니키 식스 : (1986년 초 액슬을 처음 만날 뻔했던 일에 대해) 큰 파티였어. 이지 스트래들린은 벽난로 앞에 웅크리고 있었고, 포르노 스타들은 거실에 쓰러져 있었고, 브릿 에클랜드는 비틀거리면서 화장실을 나오고 있던 밤이었지. 여자애들 두 명이 와서는 건즈 앤 로지스라는 밴드에 있는 액슬이란 남자랑 같이 왔다고 했어. 걔는 들어오고 싶었는데 스스로 물어보기엔 너무 수줍어했지. 나는 여자애들한테 "그 이름 들어본 것 같은데. 걔 기타리스트인가 누군가를 알고 있어"라고 말했더니, 그럼 들어와도 되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아니, 근데 너흰 들어와도 돼"라고 말했지.

액슬은 머틀리 크루 오프닝을 선다는 것에 기뻐했고, 받아들여준 헤드라이너(머틀리 크루)에 고마워했다.

액슬 : 환영해주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우리에게 보통 오프닝 밴드에게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조명을 줬어. 모니터도 많이 주고, 많은 걸 제공해 줬어. 정말 우릴 돕고 있는 것 같았어. 누군가 나한테 말해줬는데, 빈스 닐이 우리에 대해 좋은 말을 몇 개 해줬다는 거야.

머틀리 크루의 투어는 건즈가 여태 해왔던 것과 비교해서 훨씬 큰 공연이었고, 액슬의 말로는 밴드가 프로의식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액슬 : 머틀리와의 투어는 모두가 많이 과해지는 경향이 있어. 내가 너무 취하거나 무언가에 화가 났다면, 누군갈 때리기보다는 전화기를 던져서 벽에 있는 그림을 부숴버릴 거야. 머틀리 크루 투어의 첫 번째 밤 슬래쉬, 스티븐, 토미 리 그리고 니키 식스가 호텔에서 시합을 벌였고, 다 부숴버렸어. 우리가 계산을 했는데, 이게 비즈니스의 본질이야.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니키의 음주 대회에서 이기는 건 누가 가장 많이 마시나가 아니라, 누가 술을 많이 안 마시고 다른 사람들을 기절시키게 만드느냐야.

 

첫 번째 공연은 11월 3일 Mobile Municipal Auditorium(현재는 Mobile Civic Center)였고, 4일에는 Albany Civic Center에서 진행되었다. 그다음 공연은 11월 6일 루이지애나주 라파옛의 케이준 돔이었다. 콘서트 허용 여부에 대해 6명의 지역 대표단이 염려되는 사항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3일에 열린 공연을 보러 갔다고 한다.

The Daily Advertiser(루이지애나주 라파옛 일간지) : 케이준 돔 관계자들은 머틀리 크루의 Mobile 공연이 예상보다 괜찮다고 전했으며, 록 그룹이 금요일에 이곳에 등장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돔 위원회 위원장이 말했다. Bill Rucks 3세는 미리 보고 온 6인을 대변해서 모든 사람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으며, 지방 검사도 심각한 우려를 자아낼 만큼의 외설법 위반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에 동의했다. 이번 일은 몇몇 라파옛 시민과 단체가 머틀리 크루가 법적, 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일어났다. Rucks는 밴드가 거친 언어를 사용했다고 덧붙였지만, 가사에는 마약이나 사탄에 대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11월 7일, 같은 일간지에 11월 6일에 있었던 공연에 대해서 이런 글이 올라왔다.

The Daily Advertiser : 14세의 판타지와 부모의 악몽이었다. 심지어 건즈 앤 로지스의 오프닝 공연 전부터 데시벨 수치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건즈 앤 로지스가 무데에 오르자 소리는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음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모든 노래가 전 곡과 구분할 수 없었다. 헤비메탈 중에서도 가장 헤비 했다. 욕설은 그날 저녁의 체계였다. 글에 담을 수 없는 네 글자를 불쾌하게 규칙적으로 내뱉었다. 음악적으로, 머틀리 크루는 건즈 앤 로지스보다는 몇 년 앞서 있었다. 크루 밴드 멤버들은 대단한 스킬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다. 좋은 로큰롤이 있고, 심지어 좋은 헤비메탈도 있다. 머틀리 크루/건즈 앤 로지스 콘서트는 둘 다 아니었다. 이것은 라파옛의 젊은 시민들이 반항할 수 있는 기회일 뿐이었다.

그리고 11월 7, 8일 Lake Front Arena, 10일 Von Braun Civic Center, 11일 Charlotte Coliseum, 14일 Carolina Coliseum, 15일 Greensboro Coliseum, 18일 Jefferson Civic Center, 21일 UTC Arena에서 공연한다.


1987년 11월 22일, 액슬 애틀랜타에서 체포되다

 

11월 22일, 애틀랜타의 옴니 공연에서 액슬은 자기 친구를 밀친 경호원과 싸우려고 관객석으로 뛰어들었다. 머틀리 크루의 매니저인 Doc McGhee의 말에 의하면, 그 경호원은 비번이었던 경찰이었다고 한다. 액슬이 구금되어 있는 사이, 로디인 Big Ron이 무대로 나와 'Honky Tonk Women(롤링 스톤즈 곡)'과 'Communication Breakdown(레드 제플린 곡)'을 불렀다. 슬래쉬 역시 롤링 스톤즈 곡을 포함해 몇 곡을 불렀다고 한다. 액슬은 경찰관에게 사과문을 써서 보낸다면 풀어준다는 약속에 사과문을 썼다. 그러나 자신이 때린 경찰관을 보자 욕을 했기 때문에 액슬은 감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공연은 취소되었다. 재판을 받지 않기 위해 액슬은 경찰을 때린 것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면서 다음날 석방되었다.

액슬 : 스콧이라고 디트로이트의 음반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 건즈 앤 로지스 타투도 있고, 우리 공연에 자주 와. 애틀랜타 옴니 공연을 했었는데... 사람들은 통로로 나올 수 없었고, 무대 앞까지 올 수 없었어. 거기 법이었어. 경호원들은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25,000달러 벌금을 물릴 거였어. 그런데 몇몇 경호원들은 거기엔 관심이 없었고, 애들을 막 대하는 것에만 관심 있었어. 그날 공연에서 한 경호원이 유독 애들을 괴롭혔지. 애들은 몰라, 걔들은 무대 앞까지 와서 노는 게 공연이라 생각한 거야. 그 경호원이 너무 막 다뤘기 때문에 내가 무대에서 뛰어내려서 붙잡은 거야.

슬래쉬 : 액슬이 우리 친구를 밀친 경호원을 때리려고 뛰어내렸던 공연이 있었어. 액슬 없이 우린 공연을 끝마쳤지. 걘 감옥에 갔고, 우린 Honky Tonk Women이랑 기타 솔로를 했고, 로디가 나와서 Communication Breakdown을 부르면서 놀았어.

이지 : 애틀랜타 공연에서 액슬이 경호원에게 맞고 있는 팬을 구하려고 무대에서 뛰어내렸었어.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우린 즉흥으로 7분간 블루스 잼을 했었지.


1987년 11월 24~29일, 머틀리 크루와의 투어

 

11월 22일 애틀랜타 공연이 끝나고, 밴드는 머틀리 크루와 5번의 공연을 더 했다. 24, 25일 Lakeland Civic Center, 26일 Jacksonville, 27일 Lee Civic Center에서 진행되었다. 마지막 공연이었던 11월 29일 플로리다의 Sportarium에서는 관례대로 헤드라이너가 오프닝 밴드에게 장난을 쳤다.

스티븐 : 한번 폭탄이 터진 적이 있어. 우리가 하지도 않은 건데! 같이 투어를 돌 때 머틀리 크루가 한 거였지. 진짜 놀랐어. 첫 번째 곡인 It's So Easy를 하는데 '붐-차-붐-붐-차-쾅!'이었어. 앞에 있던 밴드 전원이 한순간에 내 뒤로 왔었지.

더프 : 깜짝 놀랐지. 대박이었어. 마지막 공연이었는데, 그들이 우리한테 장난으로 그랬지.

 

11월 29일, 니키 식스의 마약 과다 복용

머틀리 크루와의 마지막 공연 후, 슬래쉬와 니키 식스는 파티를 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레인보우 클럽으로 향했다. 니키는 그곳에서 마약 과다 복용으로 들것에 실려 나와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다. 이지의 말로는 미국 투어가 끝나고 머틀리 크루의 유럽 투어도 같이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머틀리의 마약 중독 치료 때문에 취소되었다고 한다. 아마 니키의 과다 복용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머틀리 크루와의 투어를 돌아보며

슬래쉬 : 우리가 해온 것 중에 가장 미친 투어였어.

어느 날은 슬래쉬와 니키 식스가 레슬링을 하다 슬래쉬가 목을 다치는 일도 있었다.

슬래쉬 : 머틀리 크루랑 투어를 돌 때, 술에 취해서 레슬링을 하다가 니키 식스가 나한테 덤벼들어서 내 목 척추뼈가 탈구됐었어. 무대에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매일 척추 지압사를 찾아갔지. 정말 고통스러워서 무대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냥 서있기만 했어.

액슬 : 투어를 도는 2주 간 편도선염에 걸렸었어. 무대에 오르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었지. 하지만 머틀리 크루는 대단했어. 매일 밤마다 옆에서 우리 공연을 봤고, 우리도 그들 공연을 봤지. 우리한테 50분이나 줬고, 정말 멋졌어.

1988년 6월, 액슬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니키 식스와 토미 리를 꼽았다.
1988년 한 인터뷰에서 니키 식스는 건즈 앤 로지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니키 식스 : 우린 우리만의 영향력이 있었고, 건즈 앤 로지스도 자신들만의 것이 있었어. 우린 같이 투어를 하기도 했고, 놀기도 했지. 서로 친구라고 불렀던 것 같아. 멋지지. 난 그들을 우리의 경쟁자라고 보지 않았어. 왜냐면 우린 아이들을 위해 로큰롤을 한다는 같은 목표를 두고 달려가고 있었거든. 그들은 우리가 5~6년 전에 겪었던 일들을 겪고 있어. 그들한테 더 많은 응원을 보내줘.


"건즈 앤 로지스에는 약물 중독자가 없다"

 

AFD가 발매하기 전, 슬래쉬는 밴드가 헤로인을 그만두었고, 오래된 일로 치부했다.

슬래쉬 : 지금 난 하루에 짐 빔(Jim Beam, 도수 40)을 세 병씩 마시고 있어. 이게 많다는 건 알고 있어. 헤로인 같은 거야. 조금씩 줄여가는 거지. 한때는 심각했었지만, 이제 헤로인은 밴드에서 오래된 일이야. 나랑 이지는 중독자였고, 심지어 거래도 했었어.

속이 훤히 보이는 밴드의 마약 복용에도, 밴드 멤버들은 가끔 중독을 부인하는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곤 했다.

이지 : 이렇게 말할게, 건즈 앤 로지스에는 약물 중독자 없어.

슬래쉬 : 사실 밴드는 오래전부터 꽤 깨끗한 상태였어.이지는 담배도 잘 안 피워! 스티븐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더프랑 나는 술을 마시고 있어.

 

더프 : 마약은 큰일이 아니야. 2년 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

밴드는 술에 대해서 훨씬 솔직했다. 인터뷰 중에 술을 마시거나, 취해있었기 때문에 부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슬래쉬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인터뷰 전에 술을 마시거나, 인터뷰어에게 잭 다니엘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지 : 난 중독을 겪고 있어. 딱 하나, 술을 마신다는 거. 하지만 모든 미국인들이 그렇지. 술집에서 쫓겨날 때면, 나는 "미국적이지 않네!"라고 말해.

슬래쉬 : 당분간은 차를 안 살 것 같아. 제정신이 아니라서 운전을 하다가 누굴 죽일 것 같아. 저번에 누군가의 차를 잃어버렸어. 친구 차를 빌려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취한 상태로 어딘가에 주차해뒀는데 어딘지 기억이 안 나.

더프 : 우린 마약은 안 하지만, 술은 엄청 마셔.

슬래쉬 : (인터뷰 중 보드카 더블을 네 번째 주문하고)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난 무대에 오르기 전에 어느 정도 마셔야 해. 안 그러면 불편해서 제대로 칠 수가 없어. 그리고 너무 초조해져. 많은 사람들이 내가 술 취해서 클럽을 돌아다니는 걸 보고 그게 우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아무것도 신경 안 쓰는 책임감 없는 불량한 놈들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어. 그렇긴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젊어서 그런 거지. 스톤즈도 이랬을 거라고 생각해.

밴드가 방을 부수는 것 때문에 포시즌 호텔은 밴드 출입을 금지시켰고, 이는 1992년 다시 투어를 돌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