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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포럼 번역/1987년

1987년 6~7월

6월 15일, 첫 싱글 'It's So Easy'

 

MTV와 여타 음악 채널들, 싱글과 뮤직 비디오는 앨범 판매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직 발매되지 않은 데뷔 앨범의 첫 싱글은 'It's So Easy/Mr. Brownstone'이었고, 앨범이 발매되기 훨씬 전인 6월 15일 영국에서 먼저 발매됐다. 이는 6월 런던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선 발매한 것으로 보인다.

 


1987년 여름, 액슬의 우울증과 약물 과다복용

 

액슬은 극단적인 감정 변화로 우울감을 느꼈고, Sounds 잡지에 의하면 6월 영국으로 가기 2주 전 약물 과다복용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 AFD 발매되기 전, 우울증이 더 심해졌으며 과다복용으로 죽기 직전까지 가서 위세척을 했다.

액슬 : 저번 달 즈음 약물 때문에 시다스-시나이 병원에 입원했었어. 이틀간 혼수상태에 빠졌었고, 퇴원하고 처음 본 사람은 토드 크루라는 사람이었어. 제트 보이라는 밴드에 있었는데 우리랑 놀고 다녔다는 이유로 밴드에서 쫓겨났지. 토드가 평생 알고 지내왔던 사람들보다 우리랑 더 친구였던 것 같아. 아무튼 병원을 나오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어. 왜냐면 나한테 아직 친구란 게 남아있는 줄 몰랐거든. 근데 토드가 다가와서 안아주면서 "가족한테 이런 짓하지 마(You can’t do this to the family, man)"라고 하더라고.


1987년 6월, 런던으로 가다

 

1986년 12월 발매된 'LIVE!?★@LIKE A SUICIDE'는 미국에선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영국에서는 아니었다.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EP의 인기로 영국의 음악 잡지인 Kerrang!은 로스앤젤레스로 사진사를 보내 밴드를 찍고, 1987년 초 잡지의 커버로 썼다. 인터뷰는 데뷔 앨범을 녹음하고 있던 럼보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EP가 발매되고 6개월이 지난 1987년 6월, 아직 데뷔 앨범을 발매하지도 않았지만 런던으로 가 Marquee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6월 19, 22, 28일 사흘간 진행되었다.

스티븐 : 앨런이 와서 우리한테 "다들 여권 만들어. 영국 갈 거야"라고 알려줬어.

슬래쉬는 나중에 영국에선 '슬래쉬'가 소변을 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길 우습게 생각할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더프 : 처음엔 다들 비행기에서 자고 싶어 했어. 누군가 우리한테 J&B 매그넘(1.5리터 병)의 절반을 수면제로 마시라고 준거야. 그 위스키로 슬래쉬는 파티에 온 줄 알고 비행기 비상탈출구로 나가려고 했어! 그리고 또 누구는 좌석 뒤로 담배를 던져서 불 낼뻔했고. 747기 기장이 우릴 질책했고, 경찰들은 영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다행히 매니저가 다 해결해 줬지.


1987년 6월 19일

 

애초에 영국 공연은 하루만 예정되어 있었지만, 빠르게 매진되어 하루 더 추가되었고, 결국 세 공연을 하게 되었다. 스티븐의 말로는 마지막 추가 공연은 암스테르담을 지나는 페리 안에서 결정되었다고 한다.

더프 :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밖으로 나가본 건 캐나다 밴쿠버밖에 없었다. Marquee 첫 공연이 너무 빨리 매진되고, 추가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것도 매진돼서 세 번째 공연도 추가했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 우린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밴드였다. 영국의 젊은이들이 하노이 락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그 밴드"에 우리가 선점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Marquee 공연의 일부는 영국의 프로듀서 빅 마일이 무선송수신기로 녹음했다. 6월 19일 첫 공연을 하기 전 사운드 체크에서 밴드는 'Knockin' On Heaven's Door'를 처음으로 맞춰보고, 처음으로 무대에서 불렀다.

스티븐 : 6월 11일 목요일, 유럽에서 첫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스티븐이 19일을 11일로 착각함) 사운드 체크를 하는데 다들 처음 들어본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와, 이 새 노래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안 나지만 익숙했다. 액슬이 아직 안 와서 이지랑 더프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제야 'Knockin' on Heaven's Door'라는 걸 알아챘다.

액슬 : 런던 Marquee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미쳤었어. 스테이지 다이빙은 신경 안 써, 정말로. 무대로 올라왔다가 다시 뛰어내려 가는 사람이 좋아. 멋지다고 생각해. 근데 올라와서 춤추기 시작하면 우리가 다 차 버릴 거야. 우리랑 같이 무대에 서있으려는 놈들은 다 던져버릴 거라고! 팔에 사람들을 안고 다시 무대 밑으로 던져버리고 있는 내 사진이 몇 개 있어.

첫 번째 공연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운드 잡지에 실린 글에서 앤디 허트는 액슬의 노래를 '미군으로 가장한 6피트짜리(약 180cm) 햄스터가 베트콩한테 잡혀서 잡아당겨지고, 찔리는 고문을 당하는 소리가 액슬의 소리와 비슷할 것이다. 비행기에 고환이 끼어 끔찍한 소리를 내는 본 스콧(AC/DC의 리드 싱어)의 목소리인데, 매우 겁에 질려 음낭 속에서 자유 낙하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클래식 락 잡지에 의하면 액슬은 이 충격적인 글을 읽고 매우 화가 나 밴드 전체를 이끌고 런던 북부의 모닝턴 크레센트 역에 있는 사운드지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앤디 허트? 찾으면 죽여버릴 거야!'하고 화를 냈다. 허트가 그 자리에 없었기에 다른 직원에게 경고문을 쓴 종이를 주고 갔다고 한다.


런던에서 돈을 펑펑 쓰며 지내다

 

언론들은 '영국의 유명 클럽 3곳에서 쫓겨나다', '입장 거부당하자 가게 유리를 부수다', '호텔 창문 밖으로 온갖 물건을 던지다'와 같은 기사를 내며 루머를 만들고 있었다. 액슬은 이 중 몇몇은 사실임을 인정했지만, 슬래쉬만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액슬 : 난 영국에 와서 공연이랑 인터뷰에 신경 쓰느라 정말 얌전히 있었어. 슬래쉬는 나가서 클럽에서 쫓겨나고 창문을 때려 부수고 있었고. 걘 나처럼 집중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거든.

슬래쉬 역시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슬래쉬 : Marquee에서 첫 공연은 존나 신났었어. 첫날은 엉성하고 그랬지만, 재밌었지. 길거리에서 놀고, 술도 마시고. 런던에 있을 때 제일 짜증 나게 굴었던 것 같아. 모든 펍에서 쫓겨났어. 세인트 모리츠(St Moritz) 클럽 알아? 안 들여보내 줘서 창문을 다 부숴버렸어! 발로 찼는데 경찰이 와서 슬쩍 도망쳤어. 라임라이트(Limve light) 클럽에서도 쫓겨나고, Intrepid Fox에서도 쫓겨났어. 그냥 모든 곳에 출입 금지였어.


Intrepid Fox에서 내가 필 모그(UFO 보컬)의 술을 뺏어서 내 머리에 들이붓고 다시 필에게 던졌어. 그 사람이 싫었거든. 우리 테이블로 왔는데, 난 그가 허세 부린다고 생각했어. 그냥 봐도 멋져 보였어서 그런가. 근데 앉아서 우리 테이블로 술을 주문하는 거야. 술이 오는데 내가 가져다가 깨버렸어. 다들 당연히 놀랐지. 멍청한 짓이었지만, 난 재밌었으니까 문제는 없었어... 소호 거리를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녔고, 재밌었어! 모터헤드의 레미랑 스튜디오에서 놀기도 했다. 자기들 장비도 빌려줬어. 모터헤드는 우리한테 영웅 같은 존재라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

액슬은 니븐과 주토트와 있는 동안 타워레코드의 경비와 다툼이 있었고, 경찰이 왔다고 한다.

액슬 : 거기 있는 모든 걸 부숴버리고 싶었어. 택시를 그 진열장에 박아버리고 싶어! 그런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힘들어.

이 일로 타워 레코드는 액슬에게 사과를 하고, 그에게 가게 로고가 있는 재킷을 선물한다.
위에서 슬래쉬가 말한 것처럼 모터헤드의 레미를 만나기도 한다.

레미 : 런던에서 'Orgasmotron' 음반 작업을 하고 있었어. 걔들은 Marquee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고. 86년도 일인데, 걔들은 어떤 음반도 안 낸 상태였지. 슬래쉬, 더프, 이지 그리고 스티브가 스튜디오로 왔어. 액슬만 없었지. 그들은 어린 팬처럼 그냥 앉아서 신기해했어. 우리가 걔네한테 영향을 줘서 그런가 엄청 예의차리더라.


1987년 6월 22, 28일

 

22, 28일 공연은 혹평을 들었던 19일 공연보다 훨씬 나았다. Kerrang!의 말콤 돔은 마지막 공연이 굉장했다고 칭찬한다.

 


투어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 전, 밴드는 나중에 할 투어를 꿈꾼다.

액슬 : 몇 년 간 들어온 밴드들과 같이 공연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기회를 얻을 거야.

슬래쉬 : AC/DC, 에어로스미스 아니면 머틀리 크루랑 투어 돌고 싶어.

이지 : 투어 버스를 고르는 중이야. 크고, 검은 투어 버스에 앞에는 해골이 있고, 내부는 할렘인. 마약소굴처럼 말이야.

스티븐의 말에 의하면, 첫 번째 투어 계획은 스트라이퍼(Stryper)나 Y&T와 함께하는 거였지만, 무산되었다고 한다. 1987년 초에는 아이언 메이든과 투어를 하고, 1987년 6월부터는 머틀리 크루의 "Girls, Girls, Girls" 투어의 오프닝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AFD가 아직 발매되지 않아서 머틀리는 화이트스네이크를 데리고 간다. 이후 화이트스네이크가 투어에서 하차하고, 1987년 11월 건즈가 합류한다.

더프는 밴드의 관한 루머 때문에 투어가 무산되었다고 말한다.

더프 : 루머 때문에 투어를 거절당했어. 우리가 다른 밴드한테 영향 주는 걸 원치 않으니까. 근데 우리랑 같이 투어를 돈 밴드들은 마약이나 다른 거나 전부 다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고.


1987년 7월 18일, 토드 크루가 떠나다

 

앞서 말했듯, 토드 크루는 건즈 앤 로지스의 열렬한 팬이자, 멤버들의 친구였다. 건즈 앤 로지스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제트 보이에서 해고되고, 그는 더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했다. 또 Marquee 공연을 위해 같이 영국으로 가기도 했다.

스티븐 : 토드는 처음부터 밴드의 중심 중 한 명이었다. 거칠고, 술도 많이 마시고, 유달리 멋진 놈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제트 보이에서 베이스를 쳤었고. 제트 보이에서 쫓겨났을 때 우리가 맨 처음으로 그들한테 "엿 먹어, 우리가 봤을 때 너넨 그냥 끝이야. 너네랑 절대 같이 공연 안 해"라고 말했다.

1987년 6월 영국에서 돌아오고, 밴드는 컬트의 북미 투어 오프닝을 위해 한 달간 기다려야 했다. 토드는 더프의 베이스 기술자로 투어 기간 동안 같이 있을 계획이었다. 1987년 7월 슬래쉬가 뉴욕으로 가 머천다이즈 회사를 만났고, 토드 크루도 그와 함께 갔다. 그리고 그는 AFD 발매 사흘 전인 1987년 7월 18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스티븐 : 그 자리에 없었기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른다. 슬래쉬랑 파티를 하고, 헤로인을 하고, 토드가 정신을 잃었다고 들었다. 슬래쉬랑 토드는 어느 순간 떨어졌을 거고, 그때 토드는 과다 복용으로 죽었을 거다. 무대에는 함께하지 않지만, 밴드와 너무나도 친하고 헌신적이라 건즈의 멤버라고 느껴지는 친구들이 있다. 토드는 그중 하나였고, 정말 형제를 잃은 것 같았다.

토드가 떠나고 며칠 뒤인 7월 21일, Coconut Teaszer에서 하기로 했던 Drunk Fux의 공연은 토드 크루에게 바쳐졌다. 이날은 'Appetite For Destruction'의 발매일이었다. 건즈의 모든 멤버들이 이 공연에 참여했으며, 'Knockin' On Heaven's Door'를 토드에게 바쳤다.

1989년 액슬은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액슬 : 토드 크루가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얘기하지 못한 거. 그의 건강이 걱정돼서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크게 들었어. 그땐 그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몰랐어. 나중에 시간이 있을 줄 알았지...

더프는 1993년에 발매한 솔로 앨범에 토드와 관련된 노래인 'Man In The Meadow'를 수록한다.

 

1987년 10월 20일 필라델피아
1987년 10월 5일, 영국 노팅엄

1987년 7월 21일, Appetite For Destruction

 

1987년 7월 21일, 미국에서 건즈 앤 로지스의 데뷔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이 발매된다.

스티븐 : 헬 하우스에서 열릴 '비공식 세계 프리미어'를 위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우리 새 앨범을 처음 듣는 자리였다. [...] 슬래쉬와 부둥켜안았다. 너무 행복했다. 양 사이드를 듣고, "와 잘됐네, 소리 좋다"고 듣는 내내 말했다.

밴드는 앨범 타이틀을 'Appetite For Destruction'로 정했는데, 이는 앨범 아트에 쓰인 그림의 제목이었다.

액슬 : 그림 제목에서 따온 'Appetite For Destruction'을 타이틀로 쓰기 전까지는 'Welcome to the Jungle'이 타이틀이었다. 내 주위에 있는 건 다 파괴했기 때문에 그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로버트 윌리엄스 작품의 제목이다. 다들 좋다고 했고, 그렇게 가기로 했다.

바뀌기 전의 앨범 아트. 로버트 윌리엄스의 Appetite For De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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